재래시장 활성화 해외 사례
◇ 체험·일품전략으로 경쟁력 키워 ◇

 

스페인 보케리아 시장 전경
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의 생활도 변한다. 서민경제의 한 축인 재래시장도 그 변화를 피해갈 순 없었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뿐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귀중한 장소로 그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이런 재래시장이 근래 들어 대형 유통업체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이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쇠퇴해가는 재래시장의 기능을 어떻게 하면 회복하고 활성화할 수 있을까.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시장과 일본 시즈오카현 고후쿠마치상점가는 재래시장만의 특성을 살려 대형 유통점의 위협에 맞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 스페인, 재래시장에서 요리교실 열어 ■

스페인의 보케리아시장은 바르셀로나 람블라거리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오페라 카페 등의 여가공간이 있고 바르셀로나 항구와 가까워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로 매우 붐비는 곳이다. 점포 수 800여개에 종사자 수 2300여명으로 큰 규모의 지역 중심 시장이다. 업종 구성의 대부분은 농·축·수산물로 이곳 상인들은 상품의 신선함을 긍지로 여기고 있다.

보케리아시장 활성화의 주요인 중 하나는 ‘요리교실’이다.

보케리아시장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요리교실을 열고 있다. 2003년에 시장에 실습장을 만들어 요리교실을 열었던 당초에는 직업요리사 양성을 위한 전문가 과정으로 시작했다. 그 뒤 전문가 과정의 요리교실은 쇠퇴하고 우연히 열게 된 초등학생 대상의 요리교실이 뜻밖의 좋은 반응을 보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초 취지는 초등학생들이 신선한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또 인스턴트 음식보다 천연 재료를 사용해 만든 요리가 몸에 좋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함이 컸다.

운영 방법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시내 공립 초등학교 학생과 고객 및 상인의 자녀를 대상으로 전화로 예약 신청을 받는다. 요리교실의 진행은 먼저 어린이와 요리강사가 같이 보케리아시장에서 장을 본다. 그리고 요리사로부터 재료에 대한 성분과 칼로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재료를 손질해 요리를 만든다. 완성된 요리는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 가족과 함께 먹게 한다. 어린이로 하여금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유도함과 동시에 직접 만든 요리를 가족과 함께 먹음으로써 화목한 가정을 도모하고자 함이다. 체험한 어린이는 물론 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어 예약을 하고도 대기해야 하는 상태라고 한다.

수업 중 부모의 입장은 철저히 통제된다. 이때 요리교실에 들어가지 못한 부모들은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신선한 수산물과 과일을 보케리아시장에서 구입한다.

이처럼 요리교실은 단순한 봉사활동에서 시작해 시장의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활동을 통해 시장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고 단골 확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직접 시장에서 추억을 만들 기회를 제공해 재래시장에 흥미를 갖게 한다. 장기적으로 장래의 고객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 日, 카탈로그 등 공동마케팅 전개 ■

일본의 고후쿠마치상점가는 점포 수 83개이며 인근 지역에서도 손님이 많이 방문하고 있는 광역형 상점가다. 업종 구성은 의류 및 신발, 음식점, 가정용품, 기타 소매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상점가는 일본에서 ‘일점일품(一店逸品)’ 운동이 처음 실시된 곳으로 유명하다.

일점일품 운동이란 자기 점포만의 뛰어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점포의 매출 증가와 상점가 전체의 집객력을 높인다는 데 목적을 두고 실시됐다. 이 운동이 실시된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현재의 고후쿠마치상점가 이사장인 오무라씨가 기타큐슈의 어느 상점가를 방문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은 시설이 깨끗하게 정비돼 있었지만 지나는 손님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시설을 좋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손님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통감했다고 전한다. 그 뒤 요코하마시 모토마치상점가가 잘된다는 소식을 듣고 견학차 그곳을 방문하게 됐다. 모토마치상점가는 시설이 잘 정비돼 있는 편이 아니었지만 유동인구가 많고 활기가 있었다. 알고 보니 다른 곳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개성 있는 상품을 팔고 있었다. 즉 특화된 상품을 취급하는 점포가 모여 있었다. 상품이 좋아 모토마치상점가는 활기가 있었다. 역시 개별 점포의 기본은 상품이다. 상품을 좋게 하지 않고서는 점포도 상점가도 좋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의 고후쿠마치상점가 일점일품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처음 일점일품 운동을 시작하려 하자 막상 자주적으로 참가하려는 점포는 없었다. 이것이 득이 될지 아니면 손실이 될지 상인들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메밀국수, 과자류 등 상품 개발이 쉬운 식품가게 등 5개 점포가 모여 시작해 서서히 참가자를 확대해갔다. 현재는 상인회 예산 700만엔으로 ‘일품카탈로그’를 작성해 개별 점포의 뛰어난 상품을 게재하는 형태로 상점가의 모든 점포가 참가하고 있다.

일품카탈로그에 게재되는 상품은 모두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상품은 아니다. 대부분은 기존 상품 중에서 뛰어난 상품을 발굴해낸 것이다. 결국 이 운동의 본질은 개별 점포의 활성화에 대해 상인의 의식을 개혁해 손님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일도 아니고 이벤트도 아닌 자신의 가게와 상품을 재인식해 뛰어난 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속적으로 개별 점포의 활성화를 도모해 소비자의 지지와 신뢰를 얻어가는 것이 이 운동의 취지인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상품에서 뛰어난 상품을 창출해낸다는 것은 고객의 요구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방문하는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 다른 특이점은 인근 점포의 상품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 상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상점가 상인회의 일품위원회에서는 신상품의 제작과정에서부터 신상품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서 개별 점포 간에 신상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경영상황 등의 정보도 교환하며 서로 자극을 받고 있다.

유통 환경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해외 여러 재래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사례를 보면 다음 두 가지 공통점을 들 수 있다.

첫째, 지역 주민과의 연계를 통한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것. 둘째, 자조 노력을 통한 활성화 대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일본 고후쿠마치 상점가 일대
재래시장에겐 숙제가 던져졌다.

재래시장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단독으로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와 연계해 발전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힘든 시련과 위기감을 느끼고 나서야 새로운 발상과 창의적인 노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대형 유통점의 맹점을 찾아 재래시장만이 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자주적인 마케팅 노력도 더욱 요구된다.



[이순성 / 중소기업청 시장경영 지원센터 상권연구조사팀 연구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23호(07.09.19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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