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시장의 돔 천정에 설치된 안개분무 시스템에서 물이 뿌려져 상인과 손님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폭염 뚫는 ‘시장의 지혜’
수유시장 분무시스템 온도 낮춰
“손님 감소폭 10% 이상 줄어”
목사고을시장은 ‘토요 야시장’
공주 야시장, 추억의 명화 상영
12일 낮 서울 강북구 수유동 수유전통시장 앞 거리. 장마가 물러간 뒤 한껏 기승을 부리는 더위는 시장 앞 골목도 비껴가지 않았다. 낮 최고 기온이 32.6도를 기록한 이날 가만히 있어도 등에선 땀이 비 오듯 했다. 그러나 시장 안에 들어서자 기를 쓰던 무더위가 짐짓 수그러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케이드 천장에선 희뿌연 안개가 흩날리고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주부 이동순(52)씨는 “처음엔 물방울이 느껴져 비가 새나 하고 봤지요. 알고보니 저게 온도를 낮춰주더라구요. 장보기에 한결 나아요”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도입으로 조금 어깨를 펴나 했던 전국의 전통시장들은 장마와 무더위로 한여름 몸살을 앓고 있다. 장보기 환경이 보다 나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으로 손님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 시장 상인들이 느끼는 경기 체감지수(시장경영진흥원 발표)는 47.9로 역대 최저치다. 이 때문에 무더위 대비책들을 도입해 여름을 나고 있는 시장들의 지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수유전통시장은 지난해 전국 처음으로 아케이드 천장에서 안개를 뿌려주는 ‘안개분무시스템’을 도입했다. 천장 아케이드에서 미세한 물방울이 뿜어져 나와 주위의 열을 흡수하는 설비다. 수유전통시장 상점가 진흥사업협동조합(조합)이 자체 조사한 결과, 햇볕을 가리는 아케이드와 결합할 경우 시장 내부 온도를 주변에 비해 2~3도가량 낮춰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조합 이사를 맡고 있는 최진호(51)씨는 “여름철 시장 손님은 줄 수밖에 없는데, 안개분무시스템이 감소폭을 줄여줬다. 전년에 비해 감소폭이 10% 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올해도 이 설비 덕분에 매일 2만명 가량의 손님이 꾸준히 수유시장을 찾고 있다.
분무시스템은 시장 상인들에게도 단비 같은 존재다. 청과상을 운영하는 서진우(61)씨는 “(분무시스템은) 더위를 줄여주면서 동시에 과일의 신선도를 높여준다”고 말했다. 어물전을 하는 김구미씨는 “벌레를 쫓아주니 청결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37년째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임(65)씨는 “70~90년대만 해도 여름이면 비, 더위와 싸우느라 고생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시장을 바꿔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한 낮의 더위가 수그러드는 밤 시간을 활용하는 시장들도 늘고 있다. 전남 나주의 목사고을시장은 7월13일부터 8월31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시장 광장에서 ‘한여름 토요야시장‘을 개최하고 있다. 가장 인기가 좋은 프로그램은 ‘셀프 야외 바비큐’다. 손님들은 바비큐 도구와 파라솔을 3000원에 빌린 뒤 시장에서 고기, 야채, 음료 등을 사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다. 충남 공주의 산성시장은 무더위에 잠 못드는 시민들을 위해 야시장에서 추억의 명화를 상영하는 ‘시네마 공주’를 진행한다.
상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은 시장의 변신에 필수다. 시장경영진흥원의 김영기 홍보팀장은 “분무시스템과 같은 시설 현대화 사업은 시장 상인들이 뜻을 모아 중소기업청에 신청해 채택되면 정부와 지자체, 상인회가 각각 비용의 60%, 30%, 10%를 부담해 진행하는 방식으로 자발적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전국의 1550개 시장 가운데 분무시스템을 갖춘 시장은 현재 3곳 정도에 불과하다. 중기청은 현재 진행중인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도 시장의 여름철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팀장은 “근처 명소, 특산물 등과 연계한 시장의 문화 사업을 발굴하면 주변 여름 피서객을 시장 수요로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