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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엔 시장, 2층은 마트 상권살리기 위해 적과의 동침 - 영국-스페인 해법 동아일보 기사

SYMon_Choi 2015. 4. 17. 15:36
 

1층엔 시장, 2층은 마트… 상권살리기 위해 ‘적과의 동침’  

영국-스페인의 해법

 

 

                      유럽의 성공한 전통시장들은 상권 활성화를 위해 대형마트와도 협력하는 동시에 전통시장만의 특징을 살리고 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한 건물에서 공존하는 스페인 마드리드 산안톤 시장(왼쪽 사진)과 가게 주인이 직접 물고기를 잡는 사진을 내걸고 손님에게 믿음을 파는 영국 런던의 버로 시장. 마드리드·런던=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

 

“아니, 지금도 경기가 안 좋아 죽을 지경인데 코앞에 대형마트를 유치하겠다고요?”

1998년 영국 런던에서 서북쪽으로 150km 떨어진 코번트리 시. 전통시장 상인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장만이 아닌 지역상권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일부 상인은 아연실색했다. 그러나 “더 잃을 것도 없다. 해 보자”는 의견이 우세해지면서 대형마트의 영입이 시작됐다.

세인즈베리, 막스앤드스펜서, 울워스 등 대형마트와 BHS백화점, 1파운드숍(우리나라의 1000원숍에 해당)인 파운드랜드 등으로 시장 주변이 메워졌다. 적과의 동침. 하지만 시장은 문을 닫기는커녕 여전히 건재하다. 2007년 영국시장협회로부터 ‘최고의 전통시장’으로 선정된 코번트리 시장 얘기다.


○ 적이 아닌 상권을 함께 하는 파트너

7일 코번트리역에서 내려 쇼핑센터 구역으로 들어서자 대형마트, 편의점, 백화점, 카페 등이 밀집해 있었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자 전통시장이 쇼핑센터에 둘러싸여 섬처럼 놓여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장사가 될까 의구심이 들었다.

 
걱정과 달리 시장 내부는 활기로 가득 찼다. 과일과 채소, 어류, 정육뿐만 아니라 의류, 잡화, 중고물품 등 다양한 물건을 갖춘 180여 개 점포는 문 닫은 곳이 없었고, 가게마다 손님들로 붐볐다. 일주일에 8만∼10만 명이 이 시장을 찾는다.

1964년부터 신발 장사를 한 빌 더핀 씨(64)는 시장에서 천당과 지옥을 맛봤다고 회상했다. “1958년 시장이 생기고는 정말 좋았어요. 재규어 등 자동차 공장이 잘나가 덩달아 시장도 북적였죠. 시장 바로 옆에 영국 제너럴일렉트릭컴퍼니(GEC)의 가전 공장이 있었는데 직원 6000명이 퇴근길에 장 보러 올 때면 눈코 뜰 새가 없었죠.” 하지만 1970, 80년대 공장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1980년대에 시 외곽에 대형쇼핑몰이 생기면서 시장 주변은 손님이 끊겼다. 일대가 슬럼화되면서 범죄율도 치솟았다.

어떻게 하면 시장을 살릴 수 있을까. 지방자치단체와 워릭대 등 지역 대학, 기업, 시민단체, 상인 등이 머리를 맞대고 타운센터매니지먼트(TCM)라는 조직을 구성했다. 고객의 발길을 다시 돌리려면 다양한 쇼핑시설을 한곳에 집중하고, 도심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3년부터는 지역상권을 통합 관리하는 사업환경개선지구(BID)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상권 주체들은 각자 과세표준액(rateable value)의 1.1%를 매년 부담금으로 거뒀다. 대형마트들도 부담금을 냈다. 여기에 후원금, 기여금 등을 자발적으로 냈다.

이렇게 연간 900만 파운드(약 150억 원)가량을 모아 상권 개선을 위한 공동사업을 했다. 전통시장에 자동문, 에어컨 시설, 냉온풍기 시설을 설치했다. 전통시장과 상점가 사이에 아케이드를 만들어 고객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지역 대학과 연계해 상인 교육을 하고, 거리 환경 개선, 온라인 홍보, TV 라디오 광고, 지역축제, 상권 투자유치, 보안, 청소, 주차 관리 등의 사업을 함께 추진했다.


○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색다른 동거

9일 찾은 스페인 마드리드 남부 산타마리아 시장 입구에는 시장 간판보다는 스페인 최대 대형마트 체인인 ‘메르카토나’ 간판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1층은 정육, 생선, 채소, 과일 등을 파는 전통시장, 2층은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함께 있는데 핵심 입지는 대형마트에 내줬다.

2006년 660만 유로(약 95억 원)를 들여 리모델링을 하면서 빈 점포를 활용하는 차원에서 마트를 들여왔다. 대형마트가 입점 조건으로 리모델링 비용의 40%를 부담하면서 상인들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레오노르 부에노 시장 매니저는 “단지 비용을 아끼려는 게 아니라 시장 주변에 고객을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라며 “대형마트는 기존 상인들이 판매하지 않는 유제품, 가공식품, 포장식품을 중심으로 파는 등 공존하는 길을 택했다”고 밝혔다.

마드리드의 산안톤 시장도 2년 전 리모델링을 하면서 지하 1층에 슈퍼마켓이 들어왔다. 1945년에 지어진 이 시장은 리모델링 전에는 낡고 더러워 주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38개 점포 가운데 문을 연 점포는 6개에 불과했다.

상인들을 중심으로 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1800만 유로(약 260억 원)를 들여 재건축을 했다. 백화점 쇼핑센터처럼 깔끔하게 하고, 가운데를 비운 구조로 어디서든 시장 전체를 쉽게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지하 1층은 슈퍼마켓, 1층은 고기 과일 채소 치즈 생선 빵 등을 파는 전통시장, 2층은 카페 식당가 이벤트홀, 3층은 테라스를 갖춘 고급 레스토랑으로 꾸몄다. 욜란다 알바레스 시장 관리자는 “고객을 끌기 위한 품목을 슈퍼마켓과 식당가, 전통시장이 서로 보완할 수 있다”며 “완전히 죽어 있던 시장이었는데 이제 주말이면 하루 6000명이 찾을 정도로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공존하는 전통시장이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스페인 당국도 발 벗고 나섰다. 1982년 마드리드 시는 마드리드 외곽에 메르카마드리드라는 대형 도매시장을 만들었다. 과일 채소 생선 정육 우유 와인 등을 산지에서 들여와 당일 새벽에 상인들에게 공급한다. 대량 구매로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됐고, 산지에서 마드리드로 들어온 지 1∼4시간 안에 고객에게 내놓을 수 있어 품질에서도 대형마트를 앞지르게 됐다.

루이스 풀리도 마라비야스 시장 매니저는 “시장 내 신선제품의 80%는 메르카마드리드에서 들여온다”며 “정부에서 품질을 보증하는 셈이어서 소비자들도 믿고 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코번트리·마드리드=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