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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갤러리

여름 자리 펴고 선 - 김우경 작가 _ OCI미술관

SYMon_Choi 2025. 9. 16. 17:35

OCI 미술관에서 김우경 작가의 다양한 설치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작품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아쉽게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입니다.

 

미술관에서의 설명글을 통해서 살펴본  김우경 작가

<고요한 춤>은 사물사이의 역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물줄기를> 는 이태원참사로 인한 안타까움을,

<지팡이삽> 두 개의 상반된 사물을 하나로 만들어 의미 부여를,

<여름 자리 펴고 선 천장> 거꾸로 선 의자 다리 위에 폴리카보네이트 지붕재를 얻어 거꾸로 된 세상을

사물에 대한 생각에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여 다양하게 만든 작품들...

설명을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설치작품들...

 

볼 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는데...설명글을 보니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김우영 작가님의 앞으로 사고와 생각의 폭을 넓힘으로 한 시대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작품들을 기대해 봅니다.

 

 

 

 

 

김우경

여름 자리 펴고 선  - 미술관 설명글

 

전시장 곳곳에는 손길이 머문 시간이 고요히 내려앉아있다. 나무를 깎고, 천을 엮고, 철사를 감는 섬세한 움직임 속에서 재료는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김우경의 작업은 그 작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며 시작한다. 긴 대화 끝에 완성한 형상들은 완결이 아닌 여정으로 남는다. 여정은 묵직한 여윤이 되어 전시장을 점유한다.

김우경은 익숙한 오브제를 낯설게 조합한다. 엉켜 붙은 청붉은 조각과 흘러내리는 실, 기울어진 지붕과 거꾸로 선 의자들, 의외의 결합은 어딘가에 자리를 펴고 머문 여름의 풍경처럼 잠시 숨을 고른다. 하나의 맥락 속에서 탄생한 작업은 형태와 의미, 물질과 감각, 현실과 심상이 교차하며, 놓이는 공간에 따라 또 다른 결로 흩어진다.

 

지팡이와 삽, 의자와 지붕처럼 서로에게 맞닿은 구조물은 바닥과 하늘의 경계를 흐린다. 돗자리처럼 펼쳐진 바닥은 곧 하늘이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감각의 단면이 천천히 사물의 표면에 스며들고, 그 조용한 전율은 낯선 형상을 감싸 안은 채 '지금' 여기 머문다.

 

 

지팡이와 삽

정지한 (미술미평가) - 미술관 설명글

 

김우경의 작업<고요한 춤>에는 관객을 위한 손잡이가 있다. 전시장을 찾은 누군가가 그것을 돌리면 손잡이에 연결된 이런저런 사물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관객과 비슷한 눈높이의 콩주머니를 거쳐 중간쯤 걸려있는 고무줄이 그 힘을 이어받는데, 관객의 완력이 바닥의 프로펠러와 쇠구슬에 닿을 때면 사물은 마치 힘의 기원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운동한다. 분명 그 운동은 관객이 손잡이를 돌림으로써 가능한 것이지만, 고무줄의 입장에서는 콩주머니가 회전하기에 움직일 수 있는 것이며 프로펠러는 고무줄의 탄성이 그것의 회전을 가능케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힘의 기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물사이의 역학이며, 관객의 참여만큼이나 기계장치의 자율적인 운동이 중요하다.

 

<고요한춤>의 기계적인 운동이 있기 전에도 김우경은 힘과 힘 사이의 역학을 통해 모종의 긴장관계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를테면 2020년에 발표한 작업 <계단에 올라 발판을 밟아주세요>에서 관객은 물리적인 힘을 가해 발판을 밟는다. 하지만 그 참여는 사물사이의 자율적인 운동이 아니라 특정한 수행적 사건을 일으킨다. 관객의 힘이 발판을 움직이고 그 힘이 비계를 중심으로 설치된 도르래와 끈을 통해 망치에 닿는데, 그것은 바닥을 내리치며 길쭉한 형상의 테라코타를 부순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쓴다.

 

"관객이 계단에 올라가 발판을 밟으면 망치가 올라간다. 발에서 발판을 떼면 망치가 내려감과 동시에 길게 늘어진 테라코타 길이 한 칸씩 당겨지며 부서진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흙길은 발로 밟는 유희적 노동을 통해 일순간 가루가 되어버린다."

 

작가는 테라코타로 흙길을 만들었다고 쓰고 있다. 무엇보다 그 길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인데 그 길을 헤체하는 사람이 곧 관객이다. 작가는 전시 기간 동안 준비한 테라코타가 다 소진되면 계속해서 채워가며 사라진 길을 끊임없이 그려 나갔다고 하는데, 그에게 중요한 것은 테라코타로 길의 형상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사건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그 사건은 테라코타를 길게 빚어내어 채우는 노동의 시간을 전제하는데, 작가는 그 노동이 관객의 "유희적 노동"에 의해 사라지길 원한다. 작업실에서의 노동이 그럴듯한 형상이 되고 견고하게 자리 잡는 것이 아니라 그는 타자에 의해 다시 "가루"가 되길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목에서 작가는 "계단에 올라 발판을 밟아주세요,"라고 그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물론 김우경은 조각가의 노동이 타자의 노동에 의해 무화되는 그 사건이 조각의 형상을 대체할 또 다른 이미지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관객이 조각의 해체나 주체의 죽음과 같은 미학적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희를 즐기기를 원한다. 작가가 설계한 기계 장치가 복잡한 관계망을 움직이는 순수한 놀이에 가까운 것은 타자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채 작가의 노동을 부정하기 위함이다.

김우경의 2023년 작업<사랑하는 사람에게 물줄기를>에서 관객은 호스와 물통, 그리고 호루라기와 같은 사물을 마주하지만, 아무런 단서 없이 상징적 의미를 독해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작업을 구성하는 사물을 두고 상징이라고 쓰고 있지만, 사실 작가는 그것의 의미를 소상히 밝히고 싶지 않아 짧은 글 하나를 작업이 설치된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 배치해 두었다고 한다. 사물의 운동만 볼 수도 있을 테지만, 누군가는 글과 사물을 함께 놓고 그 의미를 독해할 수도 있었다. 그 글을 옮겨적는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손을 들었다. 살려달라고 말했다. 어느 가계 직원은 찬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를 차가운 얼굴에 쏟아부었고, 맞은편 가게 사장님은 연신 호루라기를 불었다. 진공 상태에 들어선 좁은 길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루라기보다 더 큰 목소리를 부어댔다. 정신 차리세요! 밤은 새하얬고 낮은 새까맸다."

 

글은 2022년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묘사하고 있다. 글에 등장하는 호루라기는 사물로, 바가지는 천에 수를 놓은 이미지로 작품속에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도 사물과 이미지를 관통하는 기계적인 운동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관객의 참여가 아니라 모터의 힘으로 운동이 지속되는데, 한쪽 벽면에 자리한 흔들의자가 움직이고 그 의자에서부터 물을 운반하기 위해 출발하는 호스는 굽이굽이 연결되어 바가지의 이미지에 닿는다.바가지의 이미지가 수 놓인 사각형의 천 조각은 마치 이곳이 목적지라고 모두에게 알려주듯, 불빛을 투과시키며 마치 표지판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출발과 도착이 명확한 운동이지만 정작 그 길을 관통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다른 사물이다. 기다란 고무호스 속에는 물을 형상화한 파란색레이스가 가득 채워져 있는데, 느리게 움직이는 흔들의자의 진동이 그것에 미세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바가지 옆에서 회전하는 호루라기의 경우, 그 회전은 모터에 연결된 줄의 운동에 의지하는 탓에 매끄럽지 못하다. 작가는 글 속에서 호루라기의 소리에 누군가의 다급한 마음을 담았지만, 정작 기계적인 순환 운동의 일부로서의 호루라기는 모터의 운동과 사물에 미치는 중력 사이의 간극을 끊임없이 노출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김우경의 사물은 특정한 시공간을 지시하고 있지만 그날을 소묘하려 하지 않는다. 정작 운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은 모터에 연결된 끈, 그 모터를 지지하는 비계, 그리고 비계에 연결된 전등과 같은 사물들이다. 호스 속에서 흐르지 않고 제자리에서 진동하는 것 역시 물이 아니라 파란색 레이스라는 점에서, 작품의 리듬은 그날의 속도와 무관하다. 그럼에도 작가가 바가지의 이미지 곁에 물통을 세워둔 것은 정작 움직이는 것이 파란색 레이스이지만, 기계적인 운동과 함께 우리의 상상을 그날로 잠시 데려가기 위함이다. 삐걱대는 실재의 운동이 있고 바가지에 물이 차는 상상이 있다면, 결국 김우경의 작품이 관동하는 것은 바로 그 실재와 상상 사이의 좁은 틈새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살기 위해 목적 없는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브제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는 좁은 골목에서의 일을 추모하는 일기이자, 그럼에도 사랑을 사랑하는 이를 위한 말이다."

 

작가는 자신이 마련한 사물을 두고 "목적 없는 형상"이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그 목적 없는 형상은 동시에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그것들은 작가가 "살기 위해" 만든 것이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그날의 사건에 대해, 무엇이라도 해야만 해서 준비한 그 사물을 두고 작가가 "목적 없는 형상"이라고 쓰는 것은 무엇보다 그 사물이 타자를 향하기 때문이다. 사물이 존재하는 목적을 지우기 위해, 그날의 시간을 감히 말하지 않기 위해 작가는 삐걱대는 모터와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바가지에 의지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운동 속으로 자신의 "목적"이 사라질 수 있도록, 즉 "고요한 춤"으로만 남을 수 있도로고 스스로를 지워내는 것이다. 조각가의 노동이 무화될 수 있도록 마치 타자의 힘으로 테라코타를 부수듯, 기계적인 운동은 그날의 시간을 사물의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스쳐 가는 상상의 범주로 몰아내는 것이다.

 

"한쪽은 흙에 관련되고 다른 쪽은 물에 관련된다. 한쪽은 붙박여 사는 일에, 다른 쪽은 떠나는 일에 쓰인다. 땅을 파서 집을 짓고 말뚝을 박고 나무를 심음으로써 사람은 한 장소에 자신을 묶고, 노를 저음으로써 장소로부터 풀려난다(...)이 두 개의 사물, 두 개의 상반된 추구를 하나로 묶어 놓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여기서 흙은 정착을 의미하고 있지만, 조각가에게 그것은 손과 만나는 물질의 세계를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안규철은 노를 통해 물질을 매만져서 공간 속에서 형상 하나를 채우는 조각가의 삶으로부터 도주하고 싶은 마음을, 상이한 사물 사이의 결합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읽힌다. 이 말을 빌리자면 김우경 역시 테라코타를 빚는 그 작가의 시간을, 물질을 마주하는 바로 그 순간을 삽이라는 상징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작가는 노가 아니라 누군가의 다리가 될 수도 있을 지팡이를 결합했다. 그는 조각의 장소로부터의 도주가 아니라, 타자를 향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반된 추구"가 한데 모이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아니 어쩌면 타자를 외면할 수 없고, 동시에 목적 없는 형상을 만들기 위해 삽과 지팡이는 한데 모여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학력

2021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조소과 석사

201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학사

 

주요개인전

2025 여름 자리 펴고 선, OCI미술관, 서울

2021 밤나무 아래에서, 사이아트 도큐멘트, 서울

2020 아주 질긴 껌은 뱉어도 돼요, 우석갤러리, 서울

 

 

여름 자리 펴고 선 천장 polycarbonate, wood, reed, 165x150x150cm 2025

 

사랑하는 사람에게 물줄기를 호스, 물통, 호루라기 2023

 



묶어 둔 바람과 스터드가 박힌 무화과 기둥 wood, stud, thread, wire, brick, paraffin, wheel 47x70x35cm 129x37x32cm 2025

 

고요한 춤 wood, gear, steel, wonggol 2025 (좌측)
고요한 춤 wood, gear, steel, wonggol 2025 (좌측)

 

지팡이 삽 wood, steel, fabric 101x17x3cm 2025
청붉은 조각 - nobang(sheer fabric), thread_variable height x 47 x 47cm 2025

 

 

점멸 singlechannel video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