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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갤러리

예술은 사랑의 표현이다 - 마르크 샤갈 (아람누리)

SYMon_Choi 2026. 3. 4. 15:56

작년 10월부터 마르크 샤갈의 전시회가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있었습니다.

 

여러 번 시간을 내려했지만, 여러 사유로 방문하지 못하다가 2월의 마지막날이자, 장장 4개월10일간의 전시의 마지막날이었습니다. 방문해서보니 전시 마지막날 같지 않게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댓고, 마지막 도슨트 설명도 4시부터 약 40분간 이어져, 시간에 맞춰서 잘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품의 감상소감은

처음 대면한 전시된 약 300여 샤갈에 대한 작품 속에는 작품이 주는 따뜻함과 포근함 있습니다.

전시에는 원판화와 삽화 위주로 이번 전시가 꾸려졌다고 하며, 이를 통해서 작가의 보다 다양한 작품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샤갈은 시대적으로 고난과 비극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 화가로 알려져 있고, 그의 작품 세계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작가께서 거의 100세 가까운 나이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남기셔서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부터 본 판화는 화려한 꽃병이 있고, 옆에 비율적으로 맞지않는 연인들이 있습니다..  음 그래서 주제가 사랑을 노래하다.

또 삽화이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단순하지만 색감이 주는 편안함과 여러 번의 터치한 그림이 문외한인 관람자에게 친근감을 줍니다. 또 성서이야기속의 인물들 아담과 이브, 이사야, 예레미야, 모세, 다윗, 솔로몬 등의 그림은 성경속에서 글로만 보다가 작품을 통하여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잠간 둘러본 작품으로 살펴보면 마르크 샤갈은  그래픽 거장, 색채와 환상의 마술사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체 작품을 관망하고, 대표작품을 천천히 살펴보는 기회있었으면 합니다.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정리

 

기본 정보

  • 출생: 1887년 7월 7일, 벨라루스 비텝스크 근교 리오즈노
  • 사망: 1985년 3월 28일, 프랑스 생폴드방스 (향년 97세)
  • 본명: 모이세이 하치켈레비치 샤갈 (Moisey Khatskelevich Shagal)
  • 국적: 러시아 제국 → 프랑스
  • 종교: 유대교
  • 분야: 회화,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적 특징

  • 사조: 표현주의, 초현실주의에 속하면서도 특정 유파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 양식 구축
  • 별칭: "색채의 마술사" — 특히 청색을 탁월하게 표현
  • 주제:
    • 고향 비텝스크의 유대인 공동체 생활
    • 사랑과 결혼, 가족
    • 성서 이야기와 종교적 신념
    • 꿈과 환상, 시적 상상력
  • 작품 특징: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 농부·산양·닭 같은 소박한 소재 자주 사용

주요 활동

  • 러시아에서 예후다 펜(Yehuda Pen)에게 그림을 배우며 시작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온 박스트(Léon Bakst) 밑에서 수학
  • 1910년대 파리로 이주, 입체파·야수파·상징주의 등 다양한 현대미술 사조와 교류
  •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머물렀다가 전후 프랑스로 귀환
  • 스테인드글라스와 성서 판화 작업에도 큰 업적을 남김

대표 작품 및 기념관

  • 대표작: 「나와 마을」(1911), 「생일」(1915), 성서 판화 시리즈 등
  • 기념관: 프랑스 니스에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 메시지 미술관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설립

 

 

 

마르크 샤갈, 사랑과 환상의 세계를 그린 예술가

 

1887년 러시아의 작은 마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난 마르크 샤갈은 유대인 가정의 전통과 사랑 속에서 자랐다. 그는 고향에서의 추억을 마음에 새겼고, 이 기억들은 삶과 예술을 있는 원천이 되었다. 부모의 지원으로 상트페테르브르크에서 미술을 공부한 샤갈은 1914년 베를린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을 계기로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샤갈은 예술적으로 황금기를 누렸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오르피즘 등 20세기 주요 미술 사조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샤갈은 회화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벽화, 무대 미술 공예,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매체로 예술적 영역을 확장했으며, 특히 판화 작업에 깊은 열정을 기울여 1,000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했다. 미술사에서 가장 다작한 판화가중 한 명이었던 그는 흑백 에칭과 목판화, 다색 석판화까지 판화 영역에서 예술적 열정을 꽃피웠다.

 

샤갈은 20세기 판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예술적 지평을 넓혀갔다. 프랑스의 미술상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그에게 첫 판화 작업을 의뢰하였고, 이후 판화가 페르낭 무를로와 함께 석판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출판업자 테리아드는 그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판화 작품들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샤갈의 판화 컬렉션은 그의 판화 세계를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석판화, 목판화, 에칭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에는 신화 속 인물과 동물, 연인, 꽃 등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 이미지들은 샤갈의 고향 비테프스크와 그가 사랑한 파리, 그리스 신화와 성서, 러시아 문학과 그리고 당대 시인들과의 교류를 아우르며 시대를 초월한 서사를 형성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그의 작품 활동은 전부 중단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러시아로 돌아와 미술 학교의 교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절대주의 운동의 선구자였던 말레비치와 엘 리시츠키등 동시데 확들과의 예술적 갈등으로 사임하고 파리로 돌아간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유대인이었던 샤갈은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이시기에 평생 동반자이자 뮤즈였던 벨라를 잃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샤갈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의 회고전을 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전쟁 후에 샤갈은 가족과 프랑스 코트다쥐르에 정착했다. 그는 1985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활동을 몸추지 않았다.

 

수많은 고난과 정치적 혼란, 개인적인 아픔에도 불구하고 샤갈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결코 식지 않았다. 샤갈의 예술은 혁명과 전쟁의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희망의 메세지를 전한다.

 

- 미술관 소개글

 

 

 

 


 

 

"예술이란 사랑의 표현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 마르크 샤갈

 

고양문화재단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은 가우디움 어소시에이츠와 함께 <<마르크 샤갈 : 20세기 그래픽 아트의 거장, 색채와 환상을 노래하다>>를 개최 합니다.

 

색채 마술사로 불리는 현대 미술의 거장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예술 세계를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오리지널 판화와 아트북 등 3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전시는 '사랑을 노래하다.', '환상의 세계에서', '신에게 다가가다.' '파리,파리,파리', '빛과 색채', '영원한 이방인'6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평생에 걸쳐 탐구한 예술적 여정을 살표 봅니다. 각 섹션에서는 그가 방대한 판화 작업과 오리지널 아트북을 통해 시적 상상력과 회화적 감성이 어우러진 샤갈의 예술 세계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최초로 '디프니스와 클로에' 전체 작품이 소개됩니다. '사랑을 노래하다'섹션에서 보실 수 있는 이 작품은 샤갈의 그래픽 아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업적이자 대표작으로 평가 받습니다.

 

사랑과 꿈,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화폭에 담아온 마르크 샤갈, 그가 남긴 찬란한 색채와 환상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미술관 소개글

 

 

 


 

 

마르크 샤갈의 컬렉션에 대하여

 

전시에서 선보이는 마르크 샤갈(1987-1985)의 방대한 그래픽 컬렉션은 오스트리아 개인소장가와 독일 쾰른의 부아세레 갤러리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컬렉션은 1838년 설립된 부아세레 갤러리의 유구한 전문성과 개인 수집가의 안목이 결합된 결과물이며, 고유한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

 

부아세레 갤러리는 요제프와 니콜라우스 빌헬름 부아세레형제가 1838년 설립한 이래, 독일 미술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활 중하나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20세기와 21세기 모더니즘과 현대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조르주 브라크, 에두아르도 칠리다, 호안 미로, 파블로 피카소, 피에르 술라쥬 등 거장들의 판화작품을 수집 전시하며 그 명성을 공고히 했다.

 

그중에서도 부아세레 갤러리는 샤갈의 예술 세계에 대한 각별한 미학적 관심을 표명해왔으며, 지속적인 연구와 전시, 출판 활동을 통해 샤갈의 그래픽 아트를 미술사적 맥락에서 조명하는데 기여해 왔다. 전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개인 소장품은 무아세레 갤러리가 약30년에 걸쳐 개인 수집가에게 마르크 샤갈의 판화, 드로잉, 그리고 삽화책 수집을 전문적으로 자문하고 지원한 헌신의 결과물이다. 오스트리아 그뮌트 박물관에서 처음 공개된 이 컬렉션은 샤갈 예술의 초기 궤적을 심도있게 조명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미술사적 의의를 갖는다.

 

- 미술관 소개글

 

 

 


 

 

1. 사랑을 노래하다.

 

마르크 샤갈에게 사랑은 예술의 시작이자 근원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보모와 두 아내, 자녀뿐 아니라 자연과 고향, 전통, 이야기, 그리고 이상을 향한 깊고 무한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 사랑은 그에게 창의력의 원천이자 삶을 이끈 힘이었다. 사랑에 대한 갈망은 샤갈에게 세상을 탐구하고 삶을 이어갈 용기를 주었다. 샤갈의 그림에는 포옹하는 연인, 활짝 핀꽃, 순한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사랑의 다양한 형태와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랑을 노래하다' 섹션에서는 1952년 출판업자 테리아드의 의뢰로 제작된, 그리스 신화 속 가장 오래된 사랑 이야기 중에 하나인 '다프니스와 클로에' 삽화연작을 만나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염소치기와 양치기가 키운 두 고아,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성장과 사랑을 다룬다. 샤갈은 이 작품에 깊이 몰입하고자, 아내 바바와 함께 그리스로 향했다. 그는 그리스의 눈부신 햇빛과 푸른바다, 고대 신확 살아 숨 쉬는 듯한 풍경 속에서 강렬한 영감을 얻었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삽화 제작은 섬세하고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었다. 마침내 샤갈이 완성한 42점의 석판화는 1961년 책으로 출간되었고, 평단은 이를 20세기 최고의 삽화집 중 하나로 평가했다.

 

샤갈의 삽화에는 자연의 순환, 계절의 변화, 인간과 동물의 공존, 그리고 사랑이 지닌 변화의 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주제들은 작품 전반에 스며들어 감정의 깊이와 시적인 울림을 더한다.

 

- 미술관 소개글

 

 

 

다프니스와 클로에 신화 정리

 

작품 개요

  • 원작자: 고대 그리스 작가 롱고스(Longus)
  • 시기: 2세기 말 ~ 3세기 초
  • 장르: 고대 그리스 전원 로맨스 소설 (Pastoral Romance)
  • 배경: 레스보스 섬의 목가적 풍경

줄거리

  • 유기된 아기들: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각각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버려진 뒤, 목동과 목자의 손에 의해 길러짐.
  • 성장과 사랑: 두 사람은 함께 자라며 순수한 우정을 나누다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사랑을 깨닫게 됨.
  • 시련:
    • 해적의 습격, 오해와 질투, 신분의 불확실성 등 여러 장애물에 부딪힘.
    • 두 사람은 서로를 지키며 사랑을 키워감.
  • 결말: 결국 두 사람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귀족 혈통임이 드러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감.

주제와 의의

  • 순수한 사랑: 인간 본능과 감정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그린 이야기.
  • 목가적 이상향: 자연 속에서의 평화로운 삶과 사랑을 찬미.
  • 문학적 영향:
    • 유럽 르네상스 이후 목가적 문학과 예술에 큰 영향을 끼침.
    • 라벨의 발레 모음곡 〈Daphnis et Chloé〉 등 음악·미술·문학에서 재해석됨.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단순한 연애담을 넘어, 인간의 순수성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전원 로맨스입니다.

 


 

라몬, 다프니스를 발견하다. 

 

산과 황금빛 밀밭, 포도밭과 목초지가 펼쳐진 레스보스 섬의 한 마을에 염소치기 라몬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염소 떼를 돌보던 라몬은 버려진 아이가 자줏빛 망토에 둘러싸여 금 브로치와 상아 칼자루를 지닌 채 염소의 젖을 먹고 있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습니다. 라몬은 측은한 마음에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다프니스'라 이름을 지어주고 아내와 함께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드라아스, 클로에를 발견하다 

 

다프니스가 발견된 지 2년이 지나고, 또 다른 양치기 드리아스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암양 한 마리가 님프를 모시는 바위 동굴로 들어가자, 이들 쫓아갔던 드리아스는 그곳에서 암양의 젖을 먹고 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고운 천과 아주 귀한 장신구로 둘러싸여 있던 여자아이는 드리아스가 자기집으로 데려가 '클로에'라 이름을 지어주고, 자식처럼 여기며 키우기로 합니다.

 

분수 옆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세월이 흘러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우아하고 매력적인 젊은이로 성장했습니다. 어느 날, 님프들의 분수에서 목욕하는 다프니스를 본 클로에는 그의 아름다움에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샤갈의 그림은 이 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발가벗은 채 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다프니스, 그리고 그의 매끄러운 피부를 만지려 손을 뻗으며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클로에의 경외심 가득한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디오니소파네스가 도착하다 

 

라몬이 일하던 영지의 부유한 지주 디오니소파네스가 자신의 영지를 방문하였습니다. 디오니소파네스가 머무는 동안 라몬은 보물로 둘러싸인 다프니스를 우연히 발견했던 기적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라몬이 지난 이야기를 들은 디오니소파네스는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프니스는 오래전 그가 잃어버린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미술관 소개글

 

 

 

 

 


 

 

환상의 세계에서 

 

마르크 샤갈은 추상적 실험을 통해 형태와 색채를 탐구하는 동시에, 구상적 표현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독자적 예술관은 비테프스크 미술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절대주의 운동의 선구자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엘 리시츠키와의 예술적 갈등으로 드러났다. 절대주의가 추구한 기하학적 질서와 시각적 절제는 샤갈의 예술적 신념과 극명히 대비됐다. 그는 순수 추상보다 인간의 기억과 감정, 환상적 상징이 어우러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

 

그의 꿈과 상상력은 고향에서 본 친숙한 장면과 인물들을 작품 속에 담는 방식으로 구체화됐다. 샤갈은 농부와 음악가 등 고향의 인물들을 파리의 지붕 위로 날아오르게 하거나, 환상적인 풍경 속에 떠다니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현실을 초월한 세계를 동경했고 서커스는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서커스는 비범한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삶의 환희와 슬픔, 찰나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장소 였다.

 

마르크 샤갈이 처음으로 서커스를 접한 곳은 고향 비테프스크를 찾은 순회 서커스였을 것으로 보인다. 광대와 줄타기 곡예사, 불을 다루는 사람들, 말을 탄 우아한 곡예사들이 펼치는 무대는 어린 샤갈에게 가능과 불가능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 주었다. 서커스는 그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세계였고, 평생 그의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가 됐다. 샤갈은 서커스를 주제로 한 판화 포트폴리오 <<서커스>>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작업은 출판업자 앙브루아즈 블라르의 의뢰로 시작되었으나, 볼라르의 사망으로 한 때 중단 되었다. 이후 출판업자 테리아드가 1962년 이 프로젝트를 복원하면서 갸갈은 5년에 걸쳐 이를 완성했다.

 

1967년 다색 석판화 23잠과 흑백 석판화 15점이 수록된 <<서커스>>가 출간되었다. 샤갈은 직접 글을 기고해, 자신이 서커스에 매료된 이유와 그 속에서 경험한 시적이고 심오한 세계를 독자에게 풀어냈다. 그에게 서커스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인간의 기쁨과 슬픔, 삶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작은 우주였다.

 

- 미술관 설명글

 

 

 


 

 

신에게 다가가다

 

마르크 샤갈은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양한 책 삽화를 제작했으며, 직접 글을 쓰기도 했다. 그의 문학적 여정은 1922년 출간된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시작된다.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이 생동감 있게 담겼으며, 샤갈이 직접 그린 삽화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후 그는 '서커스'를 통해 공연 예술인들의 비극적 삶과 마법 같은 순간을 담아내며, 서커스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시선을 작품에 녹여냈다.

 

샤갈의 문학적 여정은 글쓰기와 삽화 제작을 넘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과 맞물렸다. 샤갈이 예술가이자 작가로서 자신을 인식한 방식은 <누워있는 시인>(1915)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풀밭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시인들과 동질감을 표현했다. 실제로 그는 동료화가들보다 시인들과 더 많이 교류했으며 자신의 작품이 시처럼 읽히기를 바랐다.

 

이러한 예술적 자각은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여러 주제와도 연결된다. 샤갈의 첫 삽화 작업은 그가 직접 고른 니콜라이 고고골의 '죽은 혼'(1842)에 실렸다. 이 소설은 쇠퇴하는 러시아 사회의 비극적 초상을 담은 현대 러시아 문학의 초석으로 평가된다. 1948년 출간된 96점의 흑백 에칭에서 샤갈은 소설 속 장면을 재치있게 그려내며, 기괴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특히 그는 죄를 탐하는 인간 군상을 에칭 기법으로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끔과 환상을 노래하는 샤갈의 작품 중 현실의 문제를 이처럼 직설적으로 다룬 경우는 드물다. 이렇듯 샤갈의 집요한 탐구는 인간의 원죄와 이를 구원하는 존재인 신에 대한 그의 평생의 갈망을 잘 보야준다. 농노제의 현실 속에서 인간의 '혼'마저 사고 파는 장면에서도 샤갈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동정을 놓치지 않으며, 이러한 관심은 이후 작품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 미술관 설명글

 

 

 

 

죽은 혼

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은 러시아 문학의 초석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극심한 개인적, 창작적 압박에 시달린 고골은 원고 일부를 스스로 훼손하거나 가까운 친구와 사이가 틀어져 우울증에 빠지는 등 각품 활동에 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고골은 결국 소설 후반부를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은 혼' 전반부는 풍자를 통해 당시 러시아 사회의 어두운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풍자와 비판이 교차하는 이야기 속에서 고골은 러시아적 정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남겼으며, 이 작품은 샤갈에게 강한 영감을 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골을  '창조적 영웅'으로 여겼고, 이 소설을 계기로 처음으로 책 삽화에 도전했습니다. 샤갈은 애쿼틴트와 에칭 기법으로 96점의 연작을 완성해 고골의 세계를 생생하게 구현했습니다.

 

죽은 혼 : 구두 수선공

이 이야기는 파렴치한 주인공 치치코프의 계략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치치코프는 관료 체계의 허술함을 이용해 사망한 뒤에도 명부상 살아있는 농노인 이른바 '죽은 농노(혼)'들의 신분을 사들입니다. 이후 그는 대량으로 확보한 '혼'을 이용해 부유한 지주로 위장하고, 이를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으려 합니다.

이 소설은 콜레라, 흉작 또는 만연한 행정 실패 등 무너져 가는 몰락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있습니다. 샤갈의 삽화 <구두수선공>에는 술에 취해 몸을 숙인 채 작업을 하고 있는 구두수선공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의자뒤에 놓인 술병과 어지러운 작업실은 그의 현실을 드러내며, 당시 러시아 사회의 부패와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죽은 혼 : 안마당

어느 날 늦은 저녁 치치코프는 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마주한 마당의 풍경은 목가적이면서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온갖 동물들은 마당을 자유롭게 누비며 인간의 간섭 없이도 평화롭게 공전하고, 무성한 과일나무는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반면 소설 속 인물들은 카드 게임에 열중하거나 말다툼을 벌이고 어설프게 춤을 추거나 졸며 하루를 보냅니다. 샤갈은 이 장면을 서툴지만 어딘가 사랑스러운, 비애와 유머가 공존하는 풍경으로 그려냈습니다.

 

 

- 미술관 설명글

 

 

 

 


 

 

빛과 색체

마르크 샤갈에게 빛과 색채는 인간과 신을 잇는 영감의 언어였다. 그는 빛을 통해 신성함을 느끼고, 색을 통해 감정을 이야기했다. 이번 섹션에서는 이러한 예술 세계가 응축된 <성경>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문학과 신앙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샤갈은 1931년 출판업자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의뢰로 <성경>연작을 제작했다. 1931년부터 1956년까지 약 25년에 걸쳐 완성된 이 시리즈는 그가 예술과 신앙을 얼마나 치열하게 탐구했는지 보여준다. 첫 65점은 1931년부터 1939년 사이에, 이후 40점은 1952년부터 1956년사이에 제작되었다.

 

샤갈은 1931년 봄, 팔레스타인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며 구약성서의 배경을 직접 체험했다. 이 여정은 그가 성경속 인물과 장면을 더욱 생생하게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경험은 작품 곳곳에 녹아있다. <성경>연작은 출애굽기 이야기부터 스테인드글라스, 모자이크 작업으로 이어지는 신성한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샤갈은 승리, 슬픔, 신성한 만남 등 감정적이면서도 영적인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색채를 활용해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처럼 샤갈에게 빛과 색채는 세상과 신 그리고 인간의 삶을 잇는 통로였다.

 

- 미술관 설명글

 

 

 

 


 

 

파리,파리,파리

 

마르크 샤갈이 처음 파리를 동경하게 된 것은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샹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던 시절이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에게 서유럽 문화의 세련된 감각을 느끼게 했다. 샤갈은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마주하며 미술가로서 시야를 넓혀갔다. 고향 비테프스크에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 샤갈은 상트페테르브르크로 이주해 성화를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고갱, 마티스, 고흐 등 프랑스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접했다. 고향에서 체득한 감성과 프랑스 예술의 감각이 교차하던 시기, 샤갈은 파리에 대한 동경을 키워갔다.

 

1911년 그는 마침내 예술의 중심지 파리로 향했다. 샤갈은 파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했으며, 루브르 미술관의 소장품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파리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여 새로운 표현 양식을 모색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던 곳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샤갈은 입체파의 형태 실험,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 그리고 로베르 들로네와 소냐 들로네가 주도한 오르피즘의 색채와 리듬 표현을 결합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발전시켰다. 오르피즘은 색과 리듬을 통해 회화를 음악처럼 표현하고자 한 사조로, 샤갈은 이 접근에 깊이 공감하며 이를 자신의 작품 세계에 통합했다.

 

샤갈의 프랑스어 실력은 서툴렀지만, 그의 그림은 파리의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가득했다.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의 기억을 간직한 채,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웅장한 건축과 자유로운 사유가 공존하는 파리는 샤갈의 예술을 성장시킨 기반이 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터전을 떠나야 했던 그는 파리를 언제나 마음속에서 그리워했다. 그의 그림 속에펠탑과 노트르담은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았다.

 

- 미술관 설명글

 

 

 

 

 

영원한 이방인

 

마르크 샤갈은 방랑자였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낯선 땅으로 떠나야 했던 그는 어디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었으며 나아가 어떤 국가나 예술 운동에도 자신을 귀속시키지 않았다.

 

샤갈은 작업 초기부터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형성했으며 이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며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샤갈의 여정은 구경과 대륙을 넘나들며, 빈곤과 정치적 격변의 시대를 끊임없이 헤쳐 나간 기록이었다. 1952년 샤갈은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삽화를 준비하며 이야기의 배경이 된 그리스를 직접 찾아간다. 그곳에서의 생생한 경험과 감정은 훗날 '오디세이아' 연작의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샤갈은 87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의 삽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샤갈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여정이었다.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낭만적인 사랑의 서사라면, '오디세이아'는 재치와 용기로 시련을 극복하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다. 샤갈은 오디세우스의 서사에서 전투의 승리가 아닌 20년 동안 남편의 귀환을 기다린 아내 페넬로페의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에 주목했다. 그는 이 작품에 온 열정을 쏟아부으며 82점의 석판화를 세밀하게 다듬었다. 샤갈이 남긴 '오디세이아'는 오늘까지도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삽화집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 미술관 설명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