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수유시장에서 재래시장의 추억을 떠올리다.
산골짜기에서 수렵 활동이나 하며 자란 저에게는 시장이란 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수 많은 형제들 가운데 엄마와 시장에 함께 간다는 것은 꿈만 같은것이었습니다.
몇일전부터 엄마에게 잘보일려고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도 곧잘 하곤 했지요.ㅎㅎ
하루전 저녁을 먹으면서 당첨결과를 발표합니다. 그 동안 어머니 고유의 평가 방법에 의해
가장 많은 점수를 받는 사람이 동행을 하게 됩니다. 저는 말썽꾸러기라 늘 엔트리넘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운의 셋째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는 정말 시장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시장에 다녀온 형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세상에 너무 신기하고 처음보는 것들이 많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기 때문이죠.
전략적 잘보이기를 실현하여 드디어 당첨이 되었던 초등학교 3학년 어느날의 이야기를 할려고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서두를 시작했습니다.
옥수수밥에 감자와 구수한 된장국을 먹으면서 엄마는 첫째는 엄마대신 집안일을 총책임을 지고 둘째는
형이 시키는대로 농사일과 집안일을 도울것이며, 셋째는 엄마와 함께 장보러 간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흥분을 삼키느라 꾸역꾸역 밥만 먹고 있었습니다.
전날밤은 밤도 너무 길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다 자고 있는데 나는 내일 내눈앞에 펼쳐진광경을 상상하느라
좀처럼 잠을 청할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20리를 걸어나가야 강릉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진부장에 갈 수가 있습니다. 시간맞춰 가야한다면서
빠른걸음으로 가우(지명)에 도착하니 버스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잠시 기다리니 버스가 오네요. 난생 처음 타보는 제가 세상에서 처음 타보는 커다란 차였습니다.
기분좋게 올라 탓는데 몇지나지도 않았는데, 속이 뒤집히는듯 울렁거렸습니다.
엄마가 멀미라고 하더군요. 찬바람을 쐬야 한다고 창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나 찬바람은 늘쐬는건데 소용이 있겠습니까. 왝 하고 내질렀죠. ㅎㅎㅎ
엄마는 나 모르게 슬그머니 웃는듯한 묘한 표정을 하고 있더군요. 햐 거짓말이 아니구나,
그토록 엄마가 말씀하셨던 멀미를 전 믿지 않았죠. 이것이 지가 처음해보는 멀미였습니다.
웃지 못할 역사를 남기고 시장에 도착하니 벌써 왁짜지껄, 시끌벅적하더군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몰려 있었고 사는사람 파는사람 모두 바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속이 안좋아 쩔쩔매며 엄마를 따라 다녔습니다. 닭을 파는 사람, 엿을 파는사람, 실을 파는사람,
생선을 파는사람, 고기를 파는사람, 쟁기를 파는사람 등 매우 다양한 사거리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니 거지 모양을 한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뭔가 즐거운듯
심각한듯 얘기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구경꾼들이 빙~둘러 앉아있고 거지모양을 한사람은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그랬던것 같았는데
어쩔때는 "애들은 가라" 이런말도 한것 같습니다.
엄마는 약장사라고 하더군요. 품바를 약장사 라고요.
이런 말들을 하니까 애덜은 가라고 하죠. 에이그 어른들하고는
엄마는 있다보면 약팔아줘야 한다면서 잠깐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 이내 내손을 이끌어 냈지요.
평창군 5일장중에 정선장 봉평장, 진부장 만 생각이 나고 다른데는 떠오르질 않네요.
시장가신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그 이후에도 늘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옛날의 시장의 기능이 근본적으로는 필요한 물건을 파는 기능을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건
소통이라 생각합니다. 통신 수단이 없던 시대에 한곳에 모여 서로의 소식과 마을의 소식을 서로 전해듣고
또 전해주는건 커다란 의미가 있는것이라 여겨 집니다.
전통시장이 주는 소통의 의미가 지금의 시대엔 뭘로 재해석하여 접목 시켜야 할까요.
개인통신장비를 갖추고 다니는 현대인들에게 재래시장은 어떤 기능을 할까요.
또 현대의 재래시장은 어떤 기능을 해야 할까요?
없어져도 별문제 없는건가요. 아님 없어져서는 안될 우리의 것인가요.
여러분은 1년에 재래시장에 몇번 가시나요?
저 어릴적 처럼 재래시장이 재미가 없어진걸까요? 그래서 더 안가게 되는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젠 서민 시장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재래시장을 이제 어떻게 변화 시켜야 하고
리모델링 해야 할까요.
하드웨어적인 리모델링은 정부지원차원에서 계속 되어지는 것 같은데 아직은
많이 부족하겠지요.
하늘에서 바라본 수유시장 전경 서울에서 젤큰 시장 맞지요.
그렇다면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요.
최근 문전성시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재래시장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이것이 재래시장의 활성화와 잘 연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문화와 재래시장의 접목이
재래시장의 활성화와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지는 아직은 미지수인것 같습니다.
혹시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을수 있으니까요.
아직도 시장은 소통의 장 인것 같습니다. 옆마을 복순이 얘기 보다는 우리마을 하나엄마의 이야기가 더 정겹고
애들은 공부를 잘하는지, 시집장가가서 잘사는지를 물어오는 상인들의 마음씀이
그냥 훈훈하기 때문이죠.
백화점 가면 그런거 잘 안물어 보잖아요. 물어보는것이 귀찮나요. 아! 그럴수도 있겠군요.
사생활에 대한 권한이 너무 드러나게 표현되는 시대이니까요.
옛날엔 사생활 진짜 별로 없었던것 같아요. 누구집에 숫가락이 몇개인지 다 알고 있었잖아요.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정겨운 소통의 場 재래시장을 현대적 재미와 즐거움으로 재정비하여
다시 활성화 시켜 보자는 열의를 가지고 블로그를 열어 가겠습니다.
산골짜기에서 수렵 활동이나 하며 자란 저에게는 시장이란 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수 많은 형제들 가운데 엄마와 시장에 함께 간다는 것은 꿈만 같은것이었습니다.
몇일전부터 엄마에게 잘보일려고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도 곧잘 하곤 했지요.ㅎㅎ
하루전 저녁을 먹으면서 당첨결과를 발표합니다. 그 동안 어머니 고유의 평가 방법에 의해
가장 많은 점수를 받는 사람이 동행을 하게 됩니다. 저는 말썽꾸러기라 늘 엔트리넘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운의 셋째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는 정말 시장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시장에 다녀온 형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세상에 너무 신기하고 처음보는 것들이 많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기 때문이죠.
전략적 잘보이기를 실현하여 드디어 당첨이 되었던 초등학교 3학년 어느날의 이야기를 할려고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서두를 시작했습니다.
옥수수밥에 감자와 구수한 된장국을 먹으면서 엄마는 첫째는 엄마대신 집안일을 총책임을 지고 둘째는
형이 시키는대로 농사일과 집안일을 도울것이며, 셋째는 엄마와 함께 장보러 간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흥분을 삼키느라 꾸역꾸역 밥만 먹고 있었습니다.
전날밤은 밤도 너무 길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다 자고 있는데 나는 내일 내눈앞에 펼쳐진광경을 상상하느라
좀처럼 잠을 청할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20리를 걸어나가야 강릉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진부장에 갈 수가 있습니다. 시간맞춰 가야한다면서
빠른걸음으로 가우(지명)에 도착하니 버스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잠시 기다리니 버스가 오네요. 난생 처음 타보는 제가 세상에서 처음 타보는 커다란 차였습니다.
기분좋게 올라 탓는데 몇지나지도 않았는데, 속이 뒤집히는듯 울렁거렸습니다.
엄마가 멀미라고 하더군요. 찬바람을 쐬야 한다고 창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나 찬바람은 늘쐬는건데 소용이 있겠습니까. 왝 하고 내질렀죠. ㅎㅎㅎ
엄마는 나 모르게 슬그머니 웃는듯한 묘한 표정을 하고 있더군요. 햐 거짓말이 아니구나,
그토록 엄마가 말씀하셨던 멀미를 전 믿지 않았죠. 이것이 지가 처음해보는 멀미였습니다.
웃지 못할 역사를 남기고 시장에 도착하니 벌써 왁짜지껄, 시끌벅적하더군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몰려 있었고 사는사람 파는사람 모두 바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속이 안좋아 쩔쩔매며 엄마를 따라 다녔습니다. 닭을 파는 사람, 엿을 파는사람, 실을 파는사람,
생선을 파는사람, 고기를 파는사람, 쟁기를 파는사람 등 매우 다양한 사거리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니 거지 모양을 한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뭔가 즐거운듯
심각한듯 얘기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구경꾼들이 빙~둘러 앉아있고 거지모양을 한사람은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그랬던것 같았는데
어쩔때는 "애들은 가라" 이런말도 한것 같습니다.
엄마는 약장사라고 하더군요. 품바를 약장사 라고요.
이런 말들을 하니까 애덜은 가라고 하죠. 에이그 어른들하고는
엄마는 있다보면 약팔아줘야 한다면서 잠깐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 이내 내손을 이끌어 냈지요.
평창군 5일장중에 정선장 봉평장, 진부장 만 생각이 나고 다른데는 떠오르질 않네요.
시장가신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그 이후에도 늘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옛날의 시장의 기능이 근본적으로는 필요한 물건을 파는 기능을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건
소통이라 생각합니다. 통신 수단이 없던 시대에 한곳에 모여 서로의 소식과 마을의 소식을 서로 전해듣고
또 전해주는건 커다란 의미가 있는것이라 여겨 집니다.
전통시장이 주는 소통의 의미가 지금의 시대엔 뭘로 재해석하여 접목 시켜야 할까요.
개인통신장비를 갖추고 다니는 현대인들에게 재래시장은 어떤 기능을 할까요.
또 현대의 재래시장은 어떤 기능을 해야 할까요?
없어져도 별문제 없는건가요. 아님 없어져서는 안될 우리의 것인가요.
여러분은 1년에 재래시장에 몇번 가시나요?
저 어릴적 처럼 재래시장이 재미가 없어진걸까요? 그래서 더 안가게 되는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젠 서민 시장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재래시장을 이제 어떻게 변화 시켜야 하고
리모델링 해야 할까요.
하드웨어적인 리모델링은 정부지원차원에서 계속 되어지는 것 같은데 아직은
많이 부족하겠지요.
하늘에서 바라본 수유시장 전경 서울에서 젤큰 시장 맞지요.
그렇다면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요.
최근 문전성시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재래시장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이것이 재래시장의 활성화와 잘 연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문화와 재래시장의 접목이
재래시장의 활성화와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지는 아직은 미지수인것 같습니다.
혹시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을수 있으니까요.
아직도 시장은 소통의 장 인것 같습니다. 옆마을 복순이 얘기 보다는 우리마을 하나엄마의 이야기가 더 정겹고
애들은 공부를 잘하는지, 시집장가가서 잘사는지를 물어오는 상인들의 마음씀이
그냥 훈훈하기 때문이죠.
백화점 가면 그런거 잘 안물어 보잖아요. 물어보는것이 귀찮나요. 아! 그럴수도 있겠군요.
사생활에 대한 권한이 너무 드러나게 표현되는 시대이니까요.
옛날엔 사생활 진짜 별로 없었던것 같아요. 누구집에 숫가락이 몇개인지 다 알고 있었잖아요.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정겨운 소통의 場 재래시장을 현대적 재미와 즐거움으로 재정비하여
다시 활성화 시켜 보자는 열의를 가지고 블로그를 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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