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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갤러리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니키 노주미(바라캇 컨템포러리)

SYMon_Choi 2025. 1. 8. 17:58

국제갤러리 옆에 있는 바라캇 컨템포러리 갤러리가 있어서 가보았는데...
이란 출신의 미국 망명작가인 이름도 생소한 "니키 노주미"의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작가는 1979년 이란 혁명후  얼마되지 않아서 망명했고,  이를 통해 현재의 "이란이슬람공화국"에 저항하는 작가로 판단되었고,  유튜브에서 검색해보니 지금도 미국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1941년생의 동시대 작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어 보니 작가의 생이 아이러니 합니다.
 
청년시절  팔레비 정권의 민주적인 절차와 인권을 도외시하는 이란의 현대화에 반대하고, 억압에 저항하는 사회활동과 작품활동으로 프랑스 유학에 선발되고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정권의 감시와 견제속에서도 혁명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활동하였고, 결국  반팔레비 저항운동이 절정에 달해 정권이 무너지고,  세계사 최초로 이슬람 문명과 공화정치를 결합시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설립되게 됩니다. 
 
혁명 직후 '테헤란현대미술관'의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에 니키 노주미작가는 주요 작가로 참여하여 120여점 작품을 전시하였지만, 혁명 이후 집권한 정권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해서 전 정권보다 더 부당하고 잔혹하게 투옥, 고문, 처형 등 탄압을 이어갔고, 이에 비판적이었던 니키 노주미 작가에 대해 먼저 언론에서 그의 작품이 지극히 저속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전시된 작품들은 성난 군중에 의해 파손 당하였고, 결국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낀 그의 모든 작품을 놓아두고 긴박하게 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시된 작품을 살펴보니...
주제인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Someone is coming with a flower" 는 원래 억압의 팔레비 왕조 시대에 저항적 의미의 주제로 시작되어 소수의 작품이 제작, 전시되었지만 그렇게 염원하던 혁명 이후의 망명생활중 작업한 이슬람 혁명정권에 대한 저항 작품들로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즉 처음에는 저항으로 상징되는 꽃의 대상은 팔레비 정권이지만, 이후는 이슬람 혁명정권으로 니키 노주미작가 자신의 처지를 속담으로 비유하자면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셈 입니다."
 
작품에 담긴 작가의 불편했을 심정을..
당시 혁명이후 있었던 고문, 억압, 탄압하는 모습으로,  또는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으로, 낙서같이 대담하고 자유롭게 그렸고, 또는 지극히 감성적이며, 반항적인 모습을 과감한 성적표현으로 작품속에 담았습니다.
또 망명이후의 모노타이프 기법 때문인지 아니면 열악한 재정상태 때문인지 도화지로 이어붙여서 만든 대형 작품들을 통하여서, 작품활동에 대한 작가의 강렬한 열망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리적 위치와 문화의 차이가 있는 니키 노주미 작가의 작품들을 통하여서 본 것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조국과 가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전시의 제목 :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Nicky Nodjoumi : Someone is coming with flower

2024.11.13 ~ 2025.1.12

 

바라컷 컨템포러리 미술관 외관

 

입구 포스터 2종 "누군가는 꽃을 들고 온다."

 

 
 
이 전시는 니키 노주미(b.1941) 두번째 바라켓 컨템포러리 개인전으로
1979년 이란 혁명 이전의 작품 세점과 함께 이란을 떠나 미국 망명 직후 1981년 마이애미에서 제작한 모노타이프  60여점을 최초로 공개한다. 모노타이프는 주로 금속 혹은 석판 위에 직접 유화구나 잉크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종이를 덮어 인쇄한 것으로, 회화와 판화의 혼합 공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에디션이 없는 유일본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니키 노주미의 1981년 모노타이프는 회화로 잘 알려져있는 그의 현재 작업의 시초가 되는 다양한 모티브와 화풍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뿐만아니라 그는 즉각적인 모노타이프의 자유로운 표현기법을 활용해 한층 더 가공되지 않은 정치적 태도, 예술적 욕구, 감정선 그리고 개인사를 담은 장면들을 다수의 작업에 표출했다.
 
전시 제목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Someone is coming with a flower" 는 노주미가 1976년 제작한 첫 모노타이프에 페르시아어로 쓴 문장이자 해당 작품의 제목이다. 이는 곧 오는 혁명을 예견하듯 민주화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담았으나, 1981년 작품군에 보이는 바와 같이 결국 더 극심한 독재 체제의 수립으로 인해 니키 노주미의 개인적 삶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는 역설적인 비극을 가리킨다.
 

- 미술관 설명글 발췌

 

굳건히 서다를 위한 습작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니키 노주미의 <굳건히 서다> (1976)을 위한 연필 드로잉 습작은 다양한 이미지 자료와 스케치를 비율에 맞게 격자로 세밀하게 배치한 후 회화를 시작하는 작가의 전형적인 준비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속의 인물은 이란의 마르크스주의 운동가, 언론인, 시인이었던 호스로 골레소르키(1944-1974)이다.
골레소르키는 팔라비 왕조를 반대하는 게릴라 운동의 주요인물로, 왕세자 레자 팔라비를 납치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974년 2월18일 총살형을 당했다.
그의 재판은 생중계되었으며, 이는 당시 테헤란에서 열린 인권관련 회담에 맞춰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는 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의 전략적 시도였으나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페르시아어로 골레소르크 golesorkh는 "붉은 장미"를 의미하며 골레소르키의 별명은 "붉은 장미"였고, 이후 이란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굳건히 서다>는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페레쉬테다프타리와 레일라 S. 디바가 큐레이팅한 <이란 모던>(2013-2014)에 전시된 바 있다. 이 작품은 뉴욕 타임스의 수석 미술 평론가 훌렌드 코터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그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이란 모던>에 전시된 1976년의 짙은 색감의 두 작품에서 그의 초기 작업의 정치적 추진력을 날카롭게 드러난다. 이것은 긴급한 예술이며, 경고의 소리가 여전히 그 주변을 감싸고 있다."
 
니키 노주미는 이미 혁명 이전부터 모노타이프와 다른 판화 기법을 실험하여 작업했으며, 책 삽화와 포스터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테헤란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그는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으며, 피루즈 시르반루가 이끄는 '네가레 Negareh' 광고 대행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네가레'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파르시드 메스갈리, 아흐마드레자 아호마디, 파리데 파르잠, 알리 아스가르 모흐타즈와 같은 저명한 예술가, 디자이너, 영화 감독들과 협업하였으며, 이후 네가레는 흔히 '카눈(Kanoon)'으로 불리는 아동청소년 지능 개발 센터의 토대를 제공했다. 카눈은 이란 아동을 위한 책, 오디오 테이프, 영화 등을 제작했다. 노주미는 오랫동안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은 그의 화화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1979년 제1회 아시아 그래픽 디자인 비엔날레에 참가하였고,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문화센터가 주최한 노마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나데르 에브라해미는 "이란의 위대한 아동 도서 일러스트 운동"이 카눈에서 시작되었으며, "니키 노주미를 이 운동의 첫 창립자 중 한 명으로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뉴욕으로 이주한 후, 노주미는 팔라비 정권에 반대하는 이란 학생 협회를 위해 포스터와 삽화를 계속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반베트남 전쟁, 블랙펜서, 팔레스타인, 쿠르디스탄 운동에 연대하여 작업했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총과 꽃
걷기 그리고 말하기
굳건히 서다

 
이란 혁명이 일어난 1979년은
니키 노주미의 삶에서도 그러했듯이 이번 전시를 짓는 순간으로 작용한다. 그의 이란 혁명 이전 작품의 상당수는 이 글에서 후술할 이유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소실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1976년 작품 세 작품은 이 시기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정치적 저항의 어둠과 희망 양쪽의 이미지를 모두 보여준다. 
 
노주미는 항상 정치적이며,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 싸워왔다.
작가는 1968년 테헤란 미술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많은 예술인이 꿈에 그리는 도시인 파리에서도 가장 명망이 높은 미술대학인 보자르 드 파리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1968년 5월 68운동이 거세게 들끓으며 장학금 지급이 중단되자 니키 노주미는 뉴욕으로 이주를 결심했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도착한 작가는 재미 이란인학생회ISA에 가입하였는데, 당시 이 학생회는 이란 팔레비왕조 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에 항의하는 시위를 정기적으로 조직했다. 당시 팔레비 정권은 서구 열강과 결탁하여 민주적 절차와 인권을 도외시하며 이란의 현대화를 강행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반팔레비 운동의 열기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다. 니키 노주미 역시 재미 이란인 학생회 활동에 대해 샤의 비밀경찰조직인 SAVAK의 취조를 받았고, 이란에서 교편을 교편을 잡거나 공적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당하는 등 팔레비정권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란을 빈번히 방문하여 전시회를 열고 반팔레비 시위에 참여했다.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란 전역의 지식인, 종교인, 학생, 노동자가 팔레비 정권 타도를 위해 단결하였고, 결국 1979년 2월11일 팔레비 왕조는 전복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루홀라 무사비 호메이니를 최고 지도자로 하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혁명 이후
얼마되지 않아 니키 노주미는 테헤란 현대미술관 TMOCA의 혁명을 기념하고 기록하기 위한 기획으로 초청되어 상당수의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다. 1980년 8월에 개막한 이 전시는 그의 <혁명의 기록 Report on the Revolution>연작을 포함한 모노타이프 판화, 드로잉, 회화 등 총 120여점 이상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은 혁명 이전만큼 혁명이후 성립된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현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을 부당하게 투옥, 처형하는 등 팔레비 왕조보다 더한 탄압을 벌였기 때문이다. 전시회 개막 직후 이란의 언론은 노주미의 작품이 무슬림 혁명군을 질타하고 깎아내리는 "대단히 저속한" 작품이라는 평을 내놓았다. 이 기사가 나간지 얼마 안 있어 미술관 측은 작품 일부를 전시에서 내렸지만 성난 군중이 관내로 들이닥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1980년 9월 22일 니키 노주미는 한 친구로부터 당장 이란을 떠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전화를 받고, 피난길에 올랐고, 그가 떠난 겨우 몇 시간뒤 그가 이용한 메흐라바드 공항을 이라크가 폭격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노주미는 테헤란 현대미술관에서저 전시된 작품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망명생활, 1981년
니키 노주미는 테헤란에서 가족이 거주 중이던 마이애미로 피신했다. 작가가 테헤란에 있던 동안 그 역시 선구적인 이란 미술가인 당시 부인 나히드 하기가트와 딸 사라는 마이애미에 거주하고 있었다.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기까지의 짧은 마이애미 생활은 작가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이란은 온 나라를 하나로 만들었던 혁명을 무색케하는 또 다른 탄압의 시대를 맞이하고 말았고, 자신의 작품은 대부분과 고향마저도 뒤로한 채 기약없이 떠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니키 노주미는 기존의 작품 및 작법에 비해 보다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작품의 모노타이프를 다수 그려냈다.
1981년작 모노타이프들은 니키 노주미의 작품 중에서도 드물게 작가 스스로의 삶을 직설적으로 각인해 그린 작품들로서, 작가의 열정, 즉흥성, 다작성 등이 더 드러나는 이전 내지는 이후 작품들과 크게 대비된다. 니키 노주미가 이란 호메이니 독재체제를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나, 작가는 타향으로 떠나와서도 저항의 최전선에 섰다. 행진하는 군중 속에 함께하지 못할 때에도 상존하는 억압을 폭로하는 작품을 쉼 없이 만드는 작가의 모습은 마치 그러한 작품활동이야말로 니키 노주미가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는 작품을 그리는 종이 위에서 만큼은 망명자 신세가 아닌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니 말이다.
 

- 미술관 설명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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