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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갤러리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 - 한가람미술관

SYMon_Choi 2024. 12. 24. 13:26

예술의 전당의 한가람 미술관에서는..
세계 3대 화가로 손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후대인 '카라바조'의 전시회가 있어서 방문하였습니다.
 
카라바조는..
미술사적으로 원근법, 구도, 색채, 명암을 안정적으로 표현한 르네상스시대에서 역동적인 구도와 빛과 어둠의 명암처리가 굉장히 극적인 바로크 시대를 연 선도적인 화가입니다.
즉, 미켈란젤로 메리시(카라바조출신으로 '카라바조'로 불림)는 작품속에서는 과거와 달리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서 작품속 인물과 정물의 음양을 입혀서 입체적으로 실사에 가까운 표현을 하였는데, 문헌을 살펴보니 이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으로 일명 카라바조가 바로크시대의 문을 열었고, 이후에 카라바조 화풍을 추종하는 세력들로 이어져, 후대 렘브란트와 투벤스에까지 영향을 준 이탈리아의 대표 화가 입니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던 카라바조의 이번 전시회는 유럽 전역의 개인 소장작품으로 구성된 카라바조의 작품을 국내 최초, 아시아 최다 작품으로 구성하였는데 다양한 성경속의 인물들의 작품들과 당시에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만든 정물화등 회화작품들과  동시대 거장들의 다채로운 바로크풍의 작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작품들의 주요 고객이었던 대주교와 교황을 배출한 이탈리아 주요가문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예수님과 성경의 내용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을 살펴보면..  
 
예수를 박해하던 사울(이후에 사도 바울)의 말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그린 '성 바오로의 회심', 예수님 탄생후의 모습  '예수의 성전 봉헌' 과 '마리아와 성자와 함께 있는 아기예수',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창에 찔린 상처에 손을 넣어보는 '성 토마스(도마)의 의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 '본디오 빌라도에게 체포되는 예수', '조롱 당하시는 예수', 환희가 아닌 고뇌에 찬 모습의 다윗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작품을 보면서, 예수님 탄생후 1500년이 지난 당시의 유럽사회에서의 카톨릭과 정교회 국가로서의 주요 사상과 정신세계를 엿 볼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세계적인 화가가 예수님의 생애와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만든 작품들이 주는 감동은 앞으로도 쉽게 느껴볼 수 없을 것 같은 훌륭한 전시였습니다.

 
 
 
 

 


 

"카라바조 그림에서 조명은, 위에 달린 광원으로부터 반사광 없이 빛을 뿌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마치 검정으로 도배된 방안으로 단 하나의 창문을 통해서 빛이 유입되는 것 같았다."
 
- 줄리오 만치니 -
 

줄리오 만치니(1559년 2월 21일 ~ 1630년 8월 22일)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감각적인 의사, 미술품 수집가, 미술품 딜러, 작가. 카라바조와 아니발레 카라치와 같은 당시 예술가들에 대한 그의 글은 정보출처 중 하나. 

 


 

 

 
 
아래는 미술관 설명글입니다.
 
카라바조 그리고 그의 시대
 
오늘날 일명 카라바조로 널리 알려진 미켈란젤로 메리시는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살았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었던 그는 종종 싸움과 범죄에 휘말렸고, 그로 인해 도망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교황의 용서를 구하려고 로마로 돌아오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1610년 토스카나주 포르토에르콜레 해변에서 병에 걸려 비극적인 끝을 맞이했다.
 
불과 40년이 채 되지 않는 생애 동안, 그는 당대 바로크 회화에 큰 혁명을 일으켰으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고 사실적인 회화를 개척했다. 열정적이고 대담했던 카라바조는 로마의 거리와 선술집에서 만날 만한 인물들을 화폭에 담아 성경 속 이야기를 재현했고, 기존의 표현 방식을 뒤집고 계층 구조에 도전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드러나는 반신 초상화들은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을 주며 강렬한 의미를 전달한다.
 
카라바조의 예술적 현상은 바로크나 고전주의와 같은 당시의 다른 예술적 흐름 중 하나로 완전히 국한시킬 수는 없다. 사실 '카라바조주의'라는 독자적인 예술 운동을 시작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카라바조의 예술적 뿌리를 찾아서 
 
미켈란젤로 메리시(일명 카라바조)는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시절, 유럽 전역에 흑사병이 퍼지면서 그의 가족은 스포르차 가문의 작은 영지인 카라바조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는 비극을 겪었다. 13세가 된 카라바조는 티치아노의 제자이자 베네치아 색채주의를 롬바르디아에 소개한 시모네 페테르차노의 작업실에서 수련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밀라노의 주요 교회들로부터 의뢰 받은 작품을 모사하며 쌓은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에 무궁무진한 도상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 후 카라바조는 롬바르디아 내륙과 베네토 지역을 여행하며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작품을 접하고 견문을 넓혀갔다.
 
이번 섹션은 로레토의 베네치아 내륙 지방 회화인 <아기 세례자 성 요한. 성 엘리사벳과 함께 있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를 소개한다. 이 작품의  부드러운 색채는 파다니아 북부 지역을 떠올리게 하며, 웅장하거나 이상화되지 않고 세속적인 현실에 고착되는 듯하다.
 
카라바조는 모레토의 작품을 보며 현실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을 익혔고, 베르나르디노 캄피, 빈센초 캄피 형제의 <회개하는 성 예로니모>는 빛으로 인물을 부각시키고 윤곽을 또렷하게 드러내어 생동감을 부여한 작품이다.
 
프란체스코 바사노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는 난로에서 피어오르는 불, 여기저기 흩어진 식기와 도구들, 닭과 생선을 손질하고 요리를 준비하는 일상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관객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스도 사도들이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와 대화하는 이 장면에서 마르타는 삶의 기쁨에 전념하는 여인으로, 마리아는 관상하는 삶의 모범적인 예를 상징한다. 조르조네 화풍의 풍경에서 빛은 구름 낀 하늘을 환히 밝히며, 이 순간의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 미술관 설명글 발췌

 
 

 
 
 

알레산드로 본비치노(모레토) - 아기 세레자 성 요한, 성 엘리사벳과 함께 있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루도비코 카라치 - 성 바오로의 회심

 
루치아노 카라치의 걸작 '성바오로의 회심'은 1587년 볼로냐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위치한 잠베카리 가문 예배당을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당시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전해진다. 젊은 카라바조 역시 그들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루도비코는 장엄하게 일어선 말에서 떨어진 바오로가 땅에 쓰러진 순간을 혁신적으로 구성했으며, 이 구도는 17세기 자연주의의 선구적인 예로 평가받는다. 이 장면은 이후 카라바조가 제작한 '성 바오로의 회심' 첫 번째 버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불과 몇 년 후 카라바조는 루도비코의 이러한 혁신적 구성 방식을 자신만의 독창적 해석으로 재창조하며,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장면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울(후일의 바오로)이 회심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사울은 기독교인 탄압을 목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로 떠났지만, 도중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 부신 빛에 의해 말에서 떨어지고 만다. 이때 그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 신성한 음성에 사울은 즉시 눈이 멀게 되며, 이후 3일간 실명한 상태로 방황하다가 다마스쿠스의 기독교 지도자인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시력을 회복하며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사울은 개종 후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후 이방인의 사도로서 기독교 복음 전파에 헌신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이 제단화는 볼로냐 국립미술관 소장작과 유사한 크기와 구도를 지닌 작품으로, 루도비코가 제작한 첫 번째 버전으로 추정된다. 이 버전은 이후 기병과 기사들이 추가되며 장면이 더욱 완성된 형태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 미굴관 작품 설명글 발췌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확대 이미지
바르톨로메오 파세로티 - 필리포 본콤파니 추기경의 초상
필리포 본콤파니 추기경의 초상 확대 이미지
베르나르디노 캄피, 빈첸초 캄피 - 회개하는 성 예로니모
"회개하는 성 예로니모"의 확대이미지
주세페 체사리 (카발리에르 다르피노) -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 확대이미지

 
 

카라바조와 거장들의 작업실
 
카라바조는 페테르차노의 작업실 외에도 카를로 보로메오 추기경이 이끌었던 밀라노 화파예술가들, 특히 피지노와 로마초 등의 작업실을 자주 찾았다. 흑사병의 유행으로 추기경의 영적, 정치적 역활이 중요했던 소위 "보르메오의 시대"에, 피지노는 붉은 추기경 복장을 한 보로메오의 측면 반신상 <성 카를로 보로메오의 초상>을 그렸다. 매부리코와 덥수룩한 수염, 근심 어린 눈빛은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민중을 향한 추기경의 깊은 헌신을 담고 있다.
 
페르차노의 제단화 <예수의 성전 봉헌>은 추카리와 사마키니의 고전주의와 파올로 베로네세의 베네치아 색채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선하고 다채로운 색감과 빛을 받은 인물의 뚜렷한 윤곽으로 화면에서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특히 이 시기 페테르치노의 작업실은 심리적 탐구가 돋보이는 초상화로 유명했으며, 이는 사회적 지위를 넘어선 표현으로, 훗날 카라바조가 완성해 나갈 자연주의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
 
1595년 카라바조는 로마에서 초기 활동을 시작했으나, 정해진 직업도 거처도 없이 푸치 몬시뇰과 함께 지냈다. 푸치 몬시뇰은 저녁 식사로 샐러드만 내놓아 "샐러드 주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후 카라바조는 로마의 주요 작업실들이 밀집한 비아 델라 스크로파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로렌초 카를리와 함께 일했고, 그라마티카의 작업실에서 큰 두상초상화를 그리는 모사 화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카발리에르 다르피노의 작업실에서 정물화 기법을 배우게 된다.
 
이전 전시에는 그라마티카의 <성 체칠리아>와 <여인의 초상(살로메로 추정)>두 점의 초상화를 선보인다. 그라마티카는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하여 음악의 수호성인인 성 체칠리아와 음악의 알레고리를 그렸다. <성 체칠리아>는 터번을 두른 성녀가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오르간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대비가 연주의 강렬함을 한층 강조한다. 반면 <여성의 초상>은 더 정적인 분위기를 띠며 보석으로 장식된 머리카락과 레이스가 달린 네크라인 같은 섬세한 장식 요소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미술관 설명글 발췌

 
 

조반니 암브로지오 피지노 - 성 카를로 보로메오의 초상
"성 카를로 보로메오의 초상" 확대 이미지
안티베두토 그라마티카 - 성 체칠리아
"성 체칠리아" 확대 이미지
시모네 페테르차노 - 예수의 성전 봉헌

 
시모네 페테르차노는 1535년경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550년대에 그곳에서 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1570년대 밀라노로 이주하기 전까지의 초기 경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자신을 여러 차례 '티치아노의 제자'로 지칭한 기록은 그의 예술적 뿌리를 짐작하게 한다.
 
페테르차노의 대표작 <예수의 성전 봉헌>에서는 티치아노의 혁신적인 기법을 그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재구성한 것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파올로 베로네세의 고전적 건축미와 파리 보르도네의 온화한 인물 묘사를 능숙하게 융합한 점이 돋보인다. 이 작품의 겉으로 보이는 단순함 뒤에는 카를로 보로메오 추기경이 밀라노 공국에서 주도한 반종교개혁의 엄격한 교리에 부응해야 했던 시대적 요구가 숨어 있다. 그 결과 작품은 고요하고 상징적이며, 시대를 초월하는 품격을 지니게 되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후에 젊은 카라바조에게 깊은 영감을 준 중요한 시각적 유산으로 평가된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안티베두로 그라마티카 - 여인의 초상(살로메로 추정)

 

"여인의 초상(살로메로 추정)" 확대이미지




 
정물화의 변모
 
카라바조가 델 몬테 추기경의 의뢰로 그리고 보로메오 추기경에게 기증한 <과일 바구니> (약1600년경)를 시작으로 정물화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카라바조는 그의 작품에서 사물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고, 극적인 빛을 활용해 미세한 디테일과 결점까지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정물화의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그의 정물화는 관객에게 내적 성찰을 유도하며, 시간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상기 시킨다.
 
카라바조와 동시대에 활동한 밀라노 출신의 페데 갈리치아(1578-1630)는 미니어처 제작을 전문으로 했던 아버지 눈치오의 영향을 받아 정물화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녀는 카라바조도 감탄할 만큼 정교한 과일 정물화를 그렸다. 이번 섹션에서는 그녀의 <배가 있는 정물화>와 <신사의 초상>을 소개한다. 특히 <배가 있는 정물화>는 무채색 배경위에 배열된 열 두개의 배를 우아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부드러운 색조와 섬세한 명암 차이를 통해 배의 결점부위까지 자연주의 표현으로 조화롭게 드러냈다.
 
반면, 오르솔라 마달레나 카치아의 작품은 다른 사례를 제시한다. 그녀는 몬칼보 수도원의 수녀원이자, 반종교개혁 시기 피에몬테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였던 굴리에모 카치아(일명 일몬칼보)의 딸이다. 주로 수도원 내 수녀나 반종교개혁 신앙을 가진 의뢰인을 위해 작품을 제작했던 그녀의 정물화는 종교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카치아의 <과일, 꽃, 메추라기가 있는 정물화>는 반종교개혁 시대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메추라기는 그리스도를, 열매를 쪼아먹는 장면은 원죄 극복을 상징하며, 무화과와 자두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난을 나타낸다.
 
또한 익명의 네덜란드 화가가 그린 <어린 바쿠스에게 와인을 주는 실레노스>는 그리스 신화속 전원의 신이자 와인, 음악, 노래를 사랑하는 신 실레노스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다. 제우스는 비범한 지혜와 예언 능력을 가진 실레노스에게 자신의 아들 디오니소스(바쿠스)의 교육을 맡겼다. 이 작품에서는 실레노스가 젊은 모습으로 묘사되며, 어두운 색의 멀리카락과 포도나무 잎으로 띠 장식된 머리를 하고 있다. 술에 취해 흐릿한 눈으로 그는 왼손에 든 주전자로 와인을 따라 어린 바쿠스에게 건네고 있다. 실레노스의 모습은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그린 젊은 바쿠스와 도상적으로 뚜렷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 미술관 설명글 발췌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확대 이미지

 
손톱이 더러운 곱슬머리 소년의 모습에서 카라바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귀 뒤에 꽂은 두개의 잎사귀가 달린 흰 장미는 사랑의 열정을 상징하는 명백한 암시로 고대에는 장미를 귀 뒤나 머리에 꽂는 것이 매혹과 사랑에 빠짐을 의미했다. 소년은 셔츠를 입고 갈색 프린지 망토를 두르고 있으며, 일부러 가슴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다. 그 앞에는 짙은 붉은 색의 체리가 놓여 있는데, 이는 욕망과 관능적인 즐거움을 암시하는 사랑의 상징으로, 다산과 감각의 기쁨을 비유한다. 유리병 속에는 장미와 재스민이 보이며, 병속에서 섬세하게 묘사된 장미 줄기의 가시는 사랑의 고통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더해, 과일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도마뱀이 소년의 손을 물어 사랑의 쾌락을 순식간에 고통으로 바꾸는 장면은 르네상스 시기의 애정 서정시에서 자주 다뤄지던 전형적인 모티브다. 이는 사랑의 신 큐피드가 제멋대로 연인을 희롱하며 화살, 독침, 가시 그리고 도마뱀의 이빨로 그들을 상처 입힌다는 은유이다. 소년의 잔뜩 찌푸린 표정과 흐트러진 자세는 성적쾌락에 몰두한 이들이 겪는 고통을 암시하며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카라바조 연구가 알프레드 모어는 "젊은 카라바조가 연애에 실패한 후 이 작품을 그린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제시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작품에는 카라바조가 그린 것으로 평가되는 두 가지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 하나는 피렌체의 로베르토 롱기 미술사 연구재단에 소장되어 있으며 또 하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보관되어 있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의 각 버전은 유사한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머리 모양, 얼굴의 표정, 뺨과 입술의 붉은 기운, 그리고 망토의 테두리 등 몇몇 세부사항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버전에서는 소년의 오른쪽 눈꺼풀 아래 고통의 눈물이 선명하게 묘사된 반면, 피렌체 버전에서는 그 눈물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며, 런던 버전에서는 눈물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요아힘 폰 잔드라르트는 1675년에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과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을 혼동하여 두작품을 하나로 합치고, 이를 카라바조가 체사리 공방에서 일하던 당시의 작품으로 판단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카라바조는 과일과 꽃이 가득 찬 바구니를 든 청년을 그렸는데, 그 청년은 도마뱀에 손을 물려 크게 울었다. 이 작품은 로마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명성을 크게 높였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페데 갈라치아 - 배가 있는 정물화
배가 있는 정물화 확대이미지
오르솔라 마달레나 카치아 - 과일, 꽃, 메추라기가 있는 정물화
페데 갈리치아 - 신사의 초상
신사의 초상 확대이미지
미켈란젤로 메리시(카라바조) -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 확대이미지
토마소 살리니 - 정물화
정물화 확대이미지
정물화 확대이미지
익명의 SB거장 - 과일과 개똥지빠귀가 있는 정물화
과일과 개똥지빠귀가 있는 정무화 확대이미지
과일과 개똥지빠귀가 있는 정물화 확대이미지
실레노스 주제의 거장, 작자미상 - 어린 바쿠스에게 와인을 주는 실레노스
어린 바쿠스에게 와인을 주는 실레노스 확대이미지

 

온건한 고전주의
 
17세기에는 자연을 연구하는 방식카라바조의 자연주의와 카라치의 고전주의로 나뉘었다. 동시대인들은 절대적인 천재 카라바조 못지않은 인물로 안니발레 카라치를 꼽으며, 그를 '신 라파엘로'라 칭송했다. 안니발레 카라치의 고전주의 회화 개혁은 제자들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그는 코레조의 환상적인 색채, 티치아노의 명암법, 라피엘로의 로마 시기 작품에서 나타난 웅장함, 그리고 고대 예술의 장엄함을 되살려 아름다움의 보편적 이념을 추구했다.
 
안니발레 카라치의 <성가족과 아기 성 세례자 요한>은 라피엘로의 <참나무의 성모>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가정적이고 일상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배경의 풍경은 여름 안개로 부드럽게 흐려져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니발레의 유산은 로마의 교황청 작업 현장에서 활동한 젊은 예술가들, 특히 카라치 가문의 볼랴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은 귀도 레니와 구에르치노 등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부유한 후원자들은 연회에서 전시할 작품을 의뢰하기 위해 경쟁했다. 카라바조의 추종자들과는 달리, 안니발레의 제자들은 뛰어난 프레스코 화가들이었고, 이는 그들이 로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였다.
 
토스카나 출신의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와 오라치오 리미날디는 이 새로운 흐름을 처음 알아챘다. 후기 매너리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카라바조의 화풍을 잠시 따랐지만, 이를 온건한 고전주의로 변모시켰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키아로스쿠로(명암 대비)가 부드러워지고, 구성이 더 정교해 졌으며, 카라바조식 실물 크기 인물들이 은은한 금빛 조명 속에서 더욱 온화하게 표현되었다.
 
구에르치노의 작품 <카마귀에게 빵과 고기를 받는 엘리야>는 하느님의 부름으로 첼리트 강가의 광야로 숨어든 선지자 엘리야가 까마귀들이 가져다 준 음식으로 생존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예언자의 거대한 몸은 대각선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의 얼국은 화면 밖의 까마귀를 향하고 있어 장면이 외부 공간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음영이 드리워진 위협적인 풍경 속에서 엘리야의 얼굴은 피로와 고독을 나타냄과 동시에 신의 자비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찢어진 옷은 화려한 주름 장식처럼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이 작품은 구에르치노가 1620년에 그린 캔버스의 또 다른 버전으로, 저명한 미술사학자이자 수집가인 데니스 마혼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한 것이다.
 

- 미술관 설명글 발췌

 
 

카를로 사라체니 - 성 카를로 보로메오
성 카를로 보로메오 확대이미지
조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구에르치노) - 다친 탄크레디를 발견한 에르미니아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안티오키아의 공주 에르미니아로, 이탈이아 화가 조반니 프란체스코 비르비에리, 일명 구에르치노에 의해 생동감있게 묘사되었다. 에르미니아는 타소의 서사시 '예루살렘의 해방'에 등장하는 반 영웅으로, 적군기사 타그레디를 향한 사랑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 사이에서 갈등을 겪은 인물이다. 안티오키아의 왕 카시안의 딸인 에르미니아는 십자군 기사 타크레디에게 포로로 잡히지만, 탄크레디는 그녀를 존중하고 보호한다. 결국 에르미니아는 자신을 정복한 탄크레디를 사랑하게 되며, 그가 자신을 풀어주자 오히려 절망에 빠진다. 
 
구에르치노는 아르간테와의 결투에서 부상을 입은 탄크레디를 어머니에게 배운 의술로 치료하는 에르미니아의 모습을 그렸다. 사랑하는 이에게 몸을 던지려는 에르미니아의 자세에서는 감정의 긴장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며, 진홍색, 황토색, 진청색 옷자락이 그녀의 몸짓을 따라 격렬하게 흩날려 이 극적인 순간을 더욱 강조한다. 탄그레디 옆에 무릎을 꿇은 발프리노는 그의 상처에 손을 얹고 있으며, 얼굴에 드러난 고통은 자연주의적 명암법을 통해 정교하게 표현되어, 그순간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다친 탄크레디를 발견한 에르미니아 확대이미지
다친 탄크레디를 발견한 에르미니아 확대이미지
다친 탄크레디를 발견한 에르미니아 확대이미지
다친 탄크레디를 발견한 에르미니아 확대이미지

 

조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 (구에르치노) - 까마귀에게 빵과 고기를 받는 엘리야
까마귀에게 빵과 고기를 받는 엘리야 확대이미지
안니발레 카라치 - 성가족과 아기 성 세례자 요한
성가족과 아기 성 세례자 요한 확대 이미지
귀도 레니 - 황홀경의 성 프란체스코
황홀경의 성 프란체스코의 확대이미지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 - 성 체칠리아
성 체칠리아 확대이미지

 

카라바조의 동료와 대립자들
 
카라바조는 온화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그의 난폭하고 거만한 모습 때문에 사소한 이유로 자주 폭력 사태에 휘말리곤 했다. 
로마에서 그와 함께 범죄를 저지른 동료로는 오라치오 젠틸레스키, 그의 적으로는 토마소 살리니조반니 발리오네가 있었다. 이 둘 모두 카라바조에게 공격을 받았다. 살리니는 비아 델라 스크로파와 캄포 마르지오 지역 사이에서 칼에 찔렸으며(1602년 10월2일), 발리오네는 트리니카 데이 몬티 근처에서 습격을 당했다 (1606년11월2일). 당시 법원 기록에는 발리오네가 카라바조와 젠틸레스키를 상대로 제기한 두 건의 명예훼손 소송이 남아 있다. 발리오네는 "피고들이 항상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법의 정의에 따라 소송 절차가 진행되기를 요구한다." 고 주장했다. 피고들은 가택연금과 "공격금지" 명령을 받았지만, 재판중에도 카라바조는 발리오네를 비난하며 "나는 조반니 발리오네를 훌륭한 화가로 칭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의 그림은 조잡하고, 최악이다."라고 말했다. 살리니에 대한 평가는 더 혹독했다. "그는 붓 잡는 결심을 세우는데만 하세월이요, 나는 이 '마오(Mao)'라는 화가가 그린 작품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이며 '마오'라는 애칭을 가진 살리나를 화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 기록에는 카라바조가 남긴 유일한 예술 비평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좋은 화가를 "자신의 기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따라서 뛰어난 화가는 자연의 사물을 잘 모방하고 잘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섹션에서는 카라바조가 나폴리에서 만나 작업실을 공유했던 루이 핀송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벨기에 브뤼헤 출신인 핀송은 국제 카라바조주의 중요한 인물로, 화가이자 상인, 모사 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카라바조의 작품인 <성 안드레아>와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비너스와 큐피드>에서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신화적 주제를 다룬 비너스와 큐피드가 묘사되어 있지만, 배경의 커튼 뒤에는 중매장이가 젊고 매력적인 처녀를 한 노인에게 소개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 미술관 설명글 발췌

 

토마스 칼리니 -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 확대이미지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 확대이미지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 -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확대이미지
카라바조주의자, 작가 미상 -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카라바조 화풍을 따른 작품)

 
이 작품의 복잡한 귀속 역사는 마우리치오 마리나와 바르바라 만쿠소에 의해 재구성되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두가지 가설에 기반한다. 첫번째는 이 작품이 카라바조의 잃어버린 원작에서 유래한 초기 복제본일 가능성이며, 두 번째는 나폴리 성도메니코 마조레 성당에 소장된 <그리스도태형>(현재 카포디몬테미술관 소장)이나 빈 미술사 박물관의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에서 파생된 변형작이라는 가설이다. 로베르토 롱기는 이 작품을 여러 차례 분석하며, 처음에는 나폴리의 <그리스토태형>을 바탕으로 한 바티스텔로 카라치올로의 작품으로 보았으나, 이후에는 카라바조 본인의 작품으로 추정했고, 마지막에는 카라바조의 복제품으로 재평가했다.
 
이 작품의 다른 두 가지 버전은 가각 마체라타 시립 미술관과 리에티 칸탈루포 사비노에 있는 카무치니 가문 소장품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니는 이 작품이 카라바조의 원작에 더 가까워지려는 시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으며, 특히 카를로 사라체나외 그의 동료들의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그리스도의 상반신과 고문자의 손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와 고문자의 얼굴 등 다른 세부 사항은 흐릿하게 처리된 특징을 발견했다.
 
사라체니의 영향 범주에는 가가 로마 시절 흡수한 네네치아적요소, 여성의 특정 얼굴 형태, 그리고 부드럽고 분위 있는 명암법을 사용한 마리오 미니티의 영향도 포함된다. 과거 일부 연구에서 미니티와 이 작품 사이의 연관성이 제기된 적이 있긴 하지만, 미니티나 다른 시칠리아 출신 카라바조파 화가의 작품일 가능성을 뒷받침할 충분한 양식적, 역사적 근거는 없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확대이미지
조반니 발리오네 - 삼손과 데릴라
삼손과 데릴라 확대이미지
삼손과 데릴라 확대이미지
삼손과 데릴라 확대이미지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 - 모욕 당하는 그리스도
모욕 당하는 그리스도 확대이미지
모욕 당하는 그리스도 확대이미지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 -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 예수와 성모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 예수와 성모 확대이미지

 

루이 핀송 - 비너스와 큐피드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 성 토마스의 의심

 
카라바조의 <성 토마스의 의심>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으로 묘사된 효과의 정점을 보여준다. 특히 토마스(도마)사도의 검지가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를 깊이 파고드는 장면은 그 충격적인 사실성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아폴론적인 완벽함을 지닌 그리스도의 신체와 서민적인 풍모의 사도들, 그리고 놀라움에 가득 찬 그들의 시선을 대조시키는 이 장면은 가톨릭 종교개혁의 포교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순교자 숭배의 부활과 사디즘적 요소를 동시에 담고 있는 이 묘사는 16세기 후반 회화에서의 동일한 주제들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한 것이다.
카라바조는 영적인 존재가 아닌, 육체와 피로 이뤄진 인간 그리스도를 그려내며 부활의 증거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토마스의 불신에 어린 시선은 오직 실체적인 증거만 확인할 수 있다는 당대의 회의적인 사고와 일치한다. 이 작품에서 카라바조는 '자연적 경험'이 미신을 넘어서야 한다는 갈릴레오의 신과학 원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성 토마스의 의심 확대이미지
성 토마스의 의심 확대이미지

 

 
 
카라바조의 유산과 카라바조주의자들
 
카라바조는 전 세대에 걸쳐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페데리코 추카리와 조반니 발리오네 같은 주요 학파의 창시자들은 그의 작품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이 현대 회화의 길을 개척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성 토마스의 의심>과 <이 뽑는 사람>에서 드러나는 객관적이고 잔인한 묘사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보고 자란 젊은 화가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들은 또한 안니발레 카라치의 안도감을 주는 캔버스에도 매료되었다.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와의 비교를 손쉽게 이겨낸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는 그가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전통 미술을 훈련 받은 화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예술 혁신은 대담하고 생생하게 주제를 표현하여 마치 눈앞에 있는 현실처럼 보이게 하는 데 있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설득력이 있었으며, 그를 공개적으로 적대시했던 조반니 발리오네와 토마소 살리니조차도 그를 모방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 유럽 전역에서 로마로 모여든 젊은 화가들은 그의 화풍을 따르며 "카라바조주의"라 불니는 진정한 "글로벌"현상을 만들어냈다. 테오도르 롬바우츠, 페드로 뉴네스 델 발레, 마티아 프레티, 루카 조르다노, 조아키노 아세레토 등이 그 예이다. 특히 플랑드르 출신의 테오도르 롬바우츠는 자칭 카라바조의 추종자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그는 대형 포맷으로 풍경화 장면을 그린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특히 악기를 그릴 때 그 실력이 돋보였다. 그의 작품 <루트를 연주하는 자화상>에서는 악기의 줄 하나하나와 풍부한 광택을 지닌 울림판을 정밀하게 묘사하며 놀라운 사실감을 통해 운율감을 전달한다.
 

- 미술관 설명글 발췌

 

미켈란젤로 메리시(카라바조) - 그리스도의 체포

 
로마에서 카라바조의 중요한 후원자 중 하나였던 마테이가문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카라바조는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그리스도의 체포>와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를 그렸다.
이 작품은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빌라도)의 로바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서 등불을 들고 체포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인물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말쿠스(말고)일 가능성이 크며, 이 인물은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으로 추정된다. 반면, 왼쪽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고통을 토하는 인물은 성 요한 복음사가로 여겨진다. 전경에 있는 병사의 망토, 튜닉, 바지에 사용된 세가지 주황색 계열의 붉은색은 카라바조가 로마시기 작품에서 자주 사용한 특유의 벽돌색을 띤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그리스도의 체포 확대이미지

 


 
 

"카라바조가 없었다면 리베라, 베르메르, 조르주 드 라 투르 그리고 렘브란트는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들라크루아와 쿠르베, 마네의 그림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 로베르토 롱기 -


무덤 속의 카라바조가 세상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11년이다. 21살 대학생 논문을 통해서이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문화 문명 비평가로 유명한 로베르토 롱기(Roberto Longhi·1890~1970)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의미와 후세에 미친 영향을 찾아낸다.

 


 
 
 

주세페 데 리베라 - 성 이레네
성 이레나 확대이미지
미켈란젤로 메리시 -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는 1603년, 카라바조가 로마의 마테이 가문의 궁전을 위해 그린 작품이다.
이후 두 가지 버전이 더 제작되었으며, 각각 로마의 바르베리니 궁전과 비미날레 궁전(현재 이탈리아 내무부 청사)에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두 손에 해골을 들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의 고독한 형상은 신성한 빛에 휩싸여 마치 은둔자의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갈색 계열로 단순화된 색조는 프란체스코의 얼굴, 해골, 그리고 바위 위에 놓인 십자가를 비추는 강렬한 빛과 산명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 확대이미지
조반니 바티스타 베이나스키(추정) - 세례자 성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
세례자 성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 확대 이미지
니콜라 르니에 -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확대이미지
파올로 제라치(카라바조 추종자) - 성 로렌초와 성 프란체스코가 있는 예수 탄생

 
이 ' 성탄절'을 주제로 한 작품은 1627-1628년에 팔레르모 화가 파올로 제라치가 제작한 카라바조 원작의 복제본이다.
안타깝게도 원본은 1969년 팔레르모의 성 로렌초 기도실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 이후 흔적없이 사라졌다. 당시 캔버스는 액자에서 잘려 과일 운반트럭에 실려 사라졌으며, 일부 도난 경위가 재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작품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복제본은 원본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성 프란체스코와 성 로렌초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성 로렌초와 성 프란체스코가 있는 예수 탄생>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다소 시대착오적인 성인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장면의 중심에는 성모 마리아가 땅에 앉아 있으며, 아기를 바라보는 피곤한 눈빛에 고독한 슬픔이 담겨 있다. 요셉은 젊은 남성으로 묘사되었는데, 원본에서는 짙은 잿빛 금발 머리를 하고 있었으나 제라치의 복제본에서는 백발로 그려졌다. 요셉은 등을 돌린 채 성 프란체스코와 목동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카라바조의 <성탈절>에 대한 연대기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처음에는 이 작품이 1609년 팔레르모의 의뢰인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최근 연구에서는 이 작품이 카라바조의 로마 시기 작품들과 구성이 유사하며, 특히 산 루이지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작품들과 구도, 배치, 양식, 세심한 색채의 중첩 및 보다 다채로운 색채 팔레트에서 결정적인 유사성을 지닌다고 밝혀졌다.
 
시칠리아 시기에 속하는 또 다른 비슷한 주제의 작품으로는 메시나의 카푸친 교회인 산타 마리아 델라 콘체치오네를 위해 1609년에 그린 <목자들의 경배>가 있다. 팔레르모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의 묘사는 확실히 덜 극적이다. 인물들이 황량한 장소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절박한 슬픔으로 다가간다. 시칠리아 시기 카라바조 특유의 갈색과 흙빛 톤이 두드러지며, 마리아와 요셉의 옷에 드러난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고하고 있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마티아 프레티 -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
겟세마네 동산의그리스도 확대이미지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 확대이미지
페드로 누네즈 델 발레 -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 확대이미지

 

마티아 프레티 - 성 암브로시오
성 암브로시오 확대이미지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 성 세바스티아노

 
조반니 바티스타 벨로리(1672)의 기록에 따르면, "성 세바스티아노와 두 집행인의 모습이 파리로 보내졌고, 그가 남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은 1877년 필리프 도를레앙 돵의 명령으로 프랑스에서 볼로냐로 옮겨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현재 소유자의 조부가 이를 구매했다.
 
이 <성 세바스티아노>는 카라바조가 나폴리에 처음 머물렀을 때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나폴리에서 처음으로 완성한 산 도메니코 성당의 <그리스도 태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면, 루앙 미술관에 소장된 동시대의 또 다른 <그리스도태형>과도 유사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카라바조는 성 세바스티아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즉 순교 장면을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성 세바스티아노가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명령에 따라 기독교를 전파한 죄로 순교하게 될 운명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두 집행인이 그의 손과 발을 나무에 묶고 있는 동안 첫 번째 화실이 그의 몸을 관통한다. 그 순간 성인의 얼굴은 고통과 경악이 교차하며 일그러지고, 본능적으로 화살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카라바조의 비범함은 첫 번째 화살을 쏜 집행인을 의도적으로 화면에 호함하지 않은 데서 더욱 돋보인다. 이 부재는 집행인이 화면 밖에 있는 관람자, 즉 우리 임을 암시하며, 결국 우리가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를 집행하는 자라는 점을 시사한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성 세바스티아노 확대이미지
마티아스 스톰 - 조롱 당하는 예수
조롱 당하는 예수 확대이미지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 성 야누아리우스의 참수 (성 아가피투스)
성 야누아리우스의 참수 확대 이미지
마티아 프레티 - 성모를 그리는 성 루카
테오도르 롬바우츠 - 루트를 연주하는 자화상
루트를 연주하는 자화상 확대이미지
아르테미시아 로미 젠틸레스키 오노프리오 팔룸보 - 아브라함과 세 천사
아브라함과 세 천사 확대이미지
주세페 데 리베라 - 예언자
예언자 확대이미지
루카 조르다노 -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확대이미지
조아키노 아세레토 - 사도 성 토마스(도마)
사도 성 토마스(도마) 확대이미지
익명의 촛불화 거장 - 기도하는 성 예로니모

 
성 예로니모는 교회의 신부이자 학자였다. 문법, 수사학, 철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인 그는 로마, 아퀼레이아, 트리아, 안티오키아, 베들레헴, 그리고 칼키스 사막 등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활동했다. 칼키스 사막에서 은둔자로 2년 동안 생활하며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연구하던 그는 전갈과 야생동물만을 동반자로 삼아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가슴을 돌로 치며 참회하는 삶을 살았다.
 
이 작품에서 성 예로니모는 냉소적인 철학자로 묘사되었으며, 나이는 들었지만 강인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허리는 긴 붉은 천으로 덮여 있고, 가는 머리와 풍성한 수염은 백발로 변했으며, 그의 황홀한 눈빛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올려다보고 있다.
 
익명의 촛불화 거장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성 예로니모가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책더미 위에 놓인 등불의 빛은 성인의 모습을 부드럽게 감싸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로니모는 손에 해골을 들고 있는데. 이는 덧없음을 상징하는 바니타스의 개념을 상기시킨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기도하는 성 예로니모 확대이미지
주세페 데 리베라 - 성 예로니모의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천사
성 예로니모의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천사 확대이미지
오라치오 리미날디 - 세례자 성 요한
세례자 성 요한 확대이미지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 황홀경의 막달라 마리아
황홀경의 막달라 마리아 확대이미지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이 작품은 베들레헴 출신의 젊은 목동 다윗과 블레셋의 용사 거인 골리앗 사이의 결투에서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사무엘상 17장), 이스라엘의 사울 왕이 블레셋 군과의 전투에 나서며, 이 결투에서 승리한 쪽이 패자를 정복할 수 있는 운명이 걸린 상황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전혀 전투 경험이 없는 다윗이 완전 무장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서며, 오직 물맷돌 하나로 거은의 이마를 정확히 맞추어 그를 쓰러뜨린다.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베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의 징표로 이를 내보인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보르게세 가문의 로마 컬렉션에서 유래한 작품으로, 1606년 보르게세 추기경의 의뢰로 카라바조가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베로리가 1672년 언급한 바 있는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다시 카라바조가 사용한 양식과 일치하며, 보르게세 미술관에 소장된 1609-1610년경의 더 널리 알려진 또 다른 버전과는 스타일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카라바조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두 점 제작했으며, 두 작품 모두 1693년 보르게세 미술관의 인벤토리 66호에 등재되어 있다. 첫 번째 기록은 "첫 번째 방 앞서 언급된 작품 옆 금박 액자에 든 다윗과 골리앗의 머리, 카라바조 작품"으로 되어있으며, 두 번째는 "네 번째 방 앞서 언급된 작품 아래, 임페리얼 캔버스, 금박액자에 든 다윗과 골리앗의 머리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작품"으로 기재되어 있다. 1790년 이후에 이 전시된 버전에 대한 언급은 사라지며, 해당작품은 1990년까지 보르게세 가문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이 작품은 2004년 데니스 마혼과 2005년 미나 그레고리의 연구를 통해 학계의 주목을 다시 받았으며, 나폴리 카포디몬테 미술관의 카라바조파 작품 복원의 대가인 브루노 아르치프레테의 작업실에서 정밀하게 복원되었다. 복원작업을 통해 카라바조의 독창적인 작업 방식이 확인되었고, 진단 검사를 통해 그의 작품 기법이 재차 입증되었다.
 
카라바조의 전기 작가들은 피가 흐르는 골리앗의 잘린 머리에서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회화적 표현을 넘어, 작가 자신이 이미지에 내면적 투영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카라바조는 이 처참한 상징을 동해  자신의 죄, 특히 다윗의 겸손함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교만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자각하고 고백한 것으로 보인다.
 

- 미술관 작품 설명글 발췌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 이 뽑는 사람
이 뽑는 사람 확대이미지
이 뽑는 사람 확대이미지
발랑탱 드 불로뉴(추정) - 조롱 당하는 그리스도
조롱 당하는 그리스도 확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