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방문 _ 강명희 작가" 의 전시회가 있어서 찾아보았습니다.
강명희 작가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남편 임세택 화백과 함께 1970년대 프랑스로 이주했던 강 작가는 1986년 한국 여성 작가 최초로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전시를 개최하며 국내외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고 합니다. 이후 2007년 제주도에 정착하여 제주의 풍광을 작품으로 만들었으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구상하여 만든 그간의 60여 년 화업을 조망하는 전시회 입니다.
전시회 입구에서부터
압도하는 작품의 크기(462x528cm)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관람을 위해서 방문하신 옆의 노신사분께서는 작품이 저렇게 크니 물감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겠느냐며 작품의 현실적인 비용문제를 언급하셨고, 동감했습니다.
도슨트의 설명도 시작 질문은
저렇게 큰 작품 약 5m의 작품들이 어떻게 제작이 되고, 이동되고, 전시되는지를 먼저 소개해 주었습니다..
작가는 작품이 너무 크므로 되도록 뉘어놓고 작업을 한다고 하고, 작품이 다 완성되면 뒤에 나무 프레임을 제거하고 화폭만 분리해서 말아두었다가, 나무프레임과 같이 이동시키고, 전시될 공간에서 다시 프레임 작업을 하여서 작품을 조립하고 전시한다고 합니다.
두번째 질문은 작가의 풍경화작품은 구상일까요? 추상일까요?
구상이라고 합니다. 추상같은 구상..
초기 작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작품이 저의 눈에는 추상화로 보이는 데...강명희 작가분의 작품을 보고 작가분의 내면의 생각이 궁금해졌습니다. 거의 대형작이 대부분이고, 또 많은 여행을 통해서 자연과 접하고, 중국을 방문하여 그곳의 시인들과 소통하고, 파리에서 오랜동안 생활을 하고, 이후에 제주도에서 오랜시간 동안 작품활동을 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여 졌습니다.
작가의 작품과 작품의 제목을 살펴보면
사실적 풍경화는 아니지만 풍경에 담아있는 자연의 색과 작가의 감정을 담은 추상같은 구상 풍경화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사를 살펴보니
작가가 프랑스에서 살 때 일상의 충실함이 충만함을 줄 것이라 믿고, 매일매일 정원관리와 작품작업으로 충실하게 보내어, 열심으로 지문이 닳을 정도로 정원과 밭을 갈고 정리했다고 하며 이때 낫을 들었다가 붓을 들었다가 반복했고, 죽어버린 엉겅퀴들을 보고 작품에는 자연과 소통하며 생명의 근원을 함축해 내야함을 알게되어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상의 충실함이 작업의 만족함을 보상하지 못함으로
답답함으로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 몽골의 고비사막,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홍콩, 중국, 대만..등을 둘러보았고, 자연의 힘의 크기와 위대함에 자신의 작음으로 두려워졌고,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모두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 가장 뚜렷한 변화는 캔퍼스의 크기라고 합니다.
7m에 달하는 큰 화폭의 작품 '비원'(전시되지 않음) 의 작업에 돌입했다고 하는데... 작가의 마음은 자연의 웅장하고 위대함을 큰 화폭에 담고자 했을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작가는 또 초나라 굴원의 장편 서사시 ‘이소’를 즐겨 필사한다고 합니다.
황제에게 바른말을 해 귀양을 떠난 굴원이 정치적 좌절, 인간적 고뇌 등을 토해내듯 쓴 시인데 작가는 시인이나 화가의 인생이 비슷하다고 느꼈던것 같습니다.
자연과 그림을 보고 느끼는 엄격함으로 작가는 젊어서 느꼈던 그릴수록 새로운 문이 열리고 숙제가 많아져서 '과연 더 그릴 수 있을까’ 하던 젊은 날의 고뇌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제는 엄격함을 감내할 연륜이 쌓였음으로 내일도, 내년에도 당연히 그릴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강명희 작가님..
구순을 바라보시지만 앞으로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기대해 봅니다...!!!
프랑스·제주 등서 지내며 영감을 받고, 바다·산·계곡 ‘자연의色’ 탐미
“더 그릴수 있을까 고뇌 사라져, 내일도 내년도 당연히 그릴 것”
“매일 보는 계곡도 십수 년을 못 그리기도 해요. 준비가 돼야 그리죠. 자연은 아름답지만 무서워요. 수천 번을 보고 나서야 가까스로 붓을 듭니다.”
“고등학교 봄 소풍 때 무리에서 빠져나와 그린 뒷동산부터 프랑스 시기, 제주에서의 근작까지 한꺼번에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이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 문화일보 25.3.31
미술관 설명글
<<강명희-방문>>은 오랜 시간 대면한 자연의 풍광 속 본질에 천착하고 존재와 자연과의 관계를 화면에 담아내며 독자적인 회화 영역을 구축한 강명희 (b1947-)의 60여년에 걸친 화업과 주요 작품들을 망라하여 선보이는 전시이다. 1972년 한국을 떠나 국내외를 오가면 활동한 작가의 화화에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영향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색채와 감성이 묻어난다. '방문'은 작가의 작품명에서 빌려온 전시 제목으로 한 곳에 완전히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작업한 작가의 유목적 태도와 일시적 만남에서 비롯된 예술적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충만한 빛과 색으로 가득한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매우 구체적인 자연의 요소에서 출발하며 긴 시간의 단련을 통한 사색과 '비워내기'라는 반복적 행위의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강명희는 몽골의 고비사막,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홍콩, 중국, 대만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태초의 풍경을 찾아 자연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평면위에서 흔들리고 부딪히며 쌓아 올려진 붓 터치와 파편들은 자연의 움직임을 닮았다. 일견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화면은 세계 혹은 자연과 치열한 대화의 산물이며 오랜시간에 걸친 무수한 붓질로 이루어진 것이다. 자연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이 시기에 땅의 역사와 기억, 파괴와 죽음, 생성과 소멸을 함축한 그의 회화는 거듭된 수행과 정화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화면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강명희의 대형 회화 앞에서 관객은 작가가 재해석한 자연을 만나고 마치 경계 없는 자연 속을 거니는 듯한 그낌을 받게 될 것이다.
작가는 2007년 고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거주하며 다채로운 자연의 풍광을 담은 추상적 회화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적 완숙기로 접어든 강명희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 낸다. 현대문명과 첨단 기술의 반대편에서 그의 작품은 강력한 생명과 재탄생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예술의 힘으로 우리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고 어루만진다. <<강명희 -방문>>은 연대기적 구성을 따르기 보다는 작가의 시공간적 경험과 의식의 흐름을 바탕으로 크게 세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섹션제목이 모두 작품명에서 비롯된 이번 전시는 제주를 중심으로 한 최근의 작업을 선보이는 '1.서광동리에 살면서'와 프랑스에서의 작업과 해외 각지를 여행하며 그린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2.방문', 그리고 현재 작업의 출발점이자 작품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는 초기작을 소개하는 '3.비원' 파트로 구성되었다.
1. 서광동리에 살면서
'서광동리에 살면서 '에서는 강명희가 2007년부터 제주도에 거주하며 제작한 비교적 최근의 작업과 제주를 중심으로 한 작가의 일상과 연결되는 회화를 소개한다. 작가는 제주에서 여러 곳의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으며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작업실을 바꾸기도 하는데 '서광동리'는 작가가 약 10년간 사용하던 작업실이 있었던 지역이다. 그는 제주에 살면서도 일시적으로 해외에 머무르며 작업하는 삶을 이어왔으며 이 파트에서는 제주에 자리 잡은 18여 년간의 삶과 예술을 함축적으로 선보인다. 작업실에서 본 실내외 풍경과 정물을 비롯하여 한라산, 황우치 해안, 대평바다, 산방산, 안덕계곡 등 제주의 구체적 지역과 장소에서 비롯된 회화가 전시된다. 작가는 한 장소를 반복적으로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시간이 축적된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땅위에서 자행되는 파괴와 상처, 자연의 위기에 대한 사유와 애도, 자연을 매개로 한 소통 등을 폭넓게 다룬다.
제주 덕수리에 위치한 작업실에는 여러 방향으로 창이 나 있어서 각각의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반복적으로 작품의 주제로 등장한다. 주로 일상의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들이다. 제주의 돌담과 나무로 된 대문이 있는 이웃집 쪽을 바라보며 그린 <이웃 담 II>과 <접시꽃>, 멀지만 선명하게 우뚝 솓아 있는 푸른 산방산의 풍경을 담은 <산방산>, 작가의 안경을 맞추곤 하는 안경사가 거주하는 집과 주변 풍경을 그린 <안경사의 집 I>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이 작업실에서는 작가가 인근에서 구한 여러 꽃과 식물을 실내에 두고 그린 정물화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작가의 삶과 작업이 일상 속에서 긴밀히 이어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강명희 작가는 2000년대부터 중국의 시인들과 교류를 하면 시와 작품을 연결하여 작품을 전시하였습니다.
아래는 전시된 중국해를 그리며 오간 편지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중국해를 그리며 오고 간 편지 I
마침내, 저편에, 마치 우리 쪽을 환하게 비추는 신비한 전리품처럼 탈취해야 할 동방이 보인다.
나는 숨 가쁘게, 멀리, 그리고 높이 여행을 이어갈 것이다. 몸을 흔들고 눈을 뒤집으며 비밀을 품은채 굳게 닫은 얇은 입술을 찾으려 애써 돌아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곳에서 고대의 바다는 사라진다. 해독할 흔적도, 찬양도 없이, 인간의 웅성거림과 울부짖음도 사그라진다. 여기, 폭풍의 한가운데, 창백한 파도에 둘러싸인 정크선과 죽은 도시들이 표류하고 있다.
대답이 없는 해안은
화강암 얼굴을
물결 앞에 펼쳐놓는다.
식인종의 저녁 식사에 초대된
손님들 사이로 펼쳐진 강보처럼.
달갑지 않은 추억들이
여름날 곤충 떼처럼 몰려드는 동안
굶주린 오우거들은, 혹은 손을, 혹은 눈을,
입에서 입으로 옮겨간다,
당신에게 미소 지으며
녹슬지 않는 요람은 물 위에 ㄸ다닌다.
아직 피어나지않은
전쟁용 헬멧처럼,
하지만 심연 속에서 우리는 침묵 속에서 서로를 삼켜버린다.
전설 속의 메기처럼.
II
수천 개의 손이 달려들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였다. 도망칩시다! 도망칩시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소, 오직 끝도 없는 황량한 땅일 뿐, 얼굴은 희미해지고, 파편은 흩어지고, 지나간 시대의 잔재만 남았다. 역사가 강력한 힘으로 전개되던 때의 흔적만이.
황제와 왕들은 청동 옷을 입고 위엄을 과시하며 서 있었다. 진실은 단 하나의 얼굴을 하고, 사실은 하나둘씩 나타났다.
그대로 두어라! 그들도 멸망하게 두어라. 높이가 뒤틀리고, 영원이 흩어졌다. 모든 것이 이 버려진 강둑에 뭉개지고 뒤섞였다.
내 가솜속에서 화산이 솟아오르기만 한다면 될 텐데.
영혼은 어디에 숨는가? 이디에서 흘러나오는가?
겉으로 보기엔 기만적인 풍경은
여전히 하늘의 영향에는 약하고
무엇보다도 회랑과
항상 갈망하는 영혼이 파놓은
보이지 않는 미궁에 가려져 있다.
무성한 풀, 물에 주름진 피부, 노랗게 변한 나무껍질, 바람에 떨고 있는 환상들.
자연의 단조로운 신비를 알리는,
경보에 지치고 시간이 지나면서 벗겨져 너덜거리는 북.
일단 선을 넘어서면, 풍경은 온통 충만해진다.
시간과 빛에 의해 방해받은
사건의 억제된 화려함으로,
마치 숫자를 기다리는 신호 같이.
III
하늘에 광경이 펼쳐진다 : 별들의 울부짖음, 우리가 흙과 물의 부스러기를 가져오는 혜성의 휘파람 소리,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 큰 재앙에 대한 불평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길은 이제 고독과 버림으로 가득하다. 저녁이 되면, 오직 램프의 기적만이 남는다.
모든 것이 나를 둘러싼다 중심도 없고, 서구 제국이 위엄 있는 인간을 위해 즐겨 길들이는 진실도 없다. 여기서, 나는 홀로 빙글빙글 돌다가 침몰한다.
나는 파도의 험준한 봉우리보다
저녁에 친구들이 나누는 날카로운 말과,
팔짱을 끼고 술을 마시고 웃으며
약속의 증기로 가득 찬 방을 더 좋아한다.
당신은 나를 기억하며
밤과 그 행렬을 위해 술을 마시고,
사냥꾼들이 피 묻은 손으로 막 운반해 온
이 마른고기를 씹고 싶을 것이다.
쌀 술은 도끼로 정신을 가르며
길을 만들고,
망각 속에서, 식탁 주위에 둘러앉은 인간들은
서로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지 모른 채
뒤섞여있다.
IV
침몰한 도시들이 이 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늘어서 있다. 불씨의 소도들과 다이아몬드 달들이 푸른 광활함을 연출한다. 거울을 어느 쪽에서 바라볼지 아떻게 알 수 있을까? 저기, 인간이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이국이 있다. 신들의 은신처.
이곳에서 사람들은 날아오른다,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하늘을 향해, 이곳에서 시간엔 시계가 없다. 이곳에서, 기억이 멈춘다.
나는 천상의 공증인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실을
킬로미터 길이의 도서관에 보관하면서
매 순간 기록한 비전을 받아들인다.
마침내 눈속에서 색이 탄생한 것을
알게 되기까지, 화가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 눈 속에서
그러므로 천지개벽 이래, 여전히 세상은 세상이다
이 밤의 향연이 계속되는 동안
비전을 원하는 자는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
이미지를 원하는 자는 아무것도 보지 않기를 선택해야 한다.
눈먼 자와 볼 수 있는 자, 취한 자와 망각하는 자들이
리듬에 맞춰 쓰러진다.
V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이 해안에 흩어져 있다. 하늘이나 나무조차 정착시킬 수 없는 원시 상태의 장소. 오직 바다뿐, 배경을 떠올리게 할만한 것은 없다. 인간은 거기에 아무것도 매달 수 없다. 부드럽게 하거나, 진정시키거나, 감동을 줄 만한 그 무엇도, 바짝 곤두선 대지는 자신의 꿈과 향신료를 가득 실은 짐을 멀리 던져버린다. 그곳은 마치 화성이나 토성과 같아서 누구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모든 것이 쉴 새 없이 동요한다.
질문은 감정이 침투할 수 없는 벽처럼 그곳에 서 있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 봄의 구름 사이로 들려오는
잊히고 전율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굉음이,
사그라든 울음소리와 말라버린 눈물이,
태양과 모래와 하늘과 바다의 밝은 빛보다 더 소중하다면?
그리고 만약 당신 말의 기억이,
어떤 존재의 흔적이,
거리와 지속시간을 손수건으로 묶어주는 것이,
황혼의 수백 가지 화음보다 나를 더 감동하게 한다면?
그렇지 않다면, 나는 돌 중의 돌이 되고, 파도 중의 파도가 되어
어떤 포옹도 거부하리라.
그렇게, 무심한 자연과 하나 된다면,
숨이 찰 이유가 없지 않은가
VI
여행 내내 말은 분해되어, 반짝이는 바위 아래서 물과 바람의 소리에 녹아들고, 추억의 항아리 속엔 새와 물고기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런데도 가방은 여전히 비어 있다.
나는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에서, 완전한 소유권을 가지고 세상을 활보하던 시절, 고대 생명의 근원과 같은 생생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같은 붓, 같은 손, 같은 숨결로
사물의 떨림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할 공통의 언어를
소리와 색깔
두가지 혼미가 서로 마주보고 소용돌이 친다.
의미에서 붕괴되어 파도와 꿈의 흐름을 따라 우리는
생명의 근원에서 멀어져
얼어버린 사막을 향해 나아갔다
무심한 선과 단어로 뒤덮인 이 해안이 몹시 그립다.
우리의 기호들이 산산조각 부서져 가시처럼 서로를 삼킬 때
장미는 사라졌다.
VII
오늘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연기 냄새와 녹슨 쇳덩이처럼 부패한 몸뚱이들 뿐, 이미지가 켜켜로 쌓여간다. 기억의 분노로 여전히 많은 이가 죽어간다. 무장한 백성들이 장엄하게 싸울 때 깃발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합창이 모든 것을 산산이 흩뜨려 버린다. 소와 비쩍 마른 고양이 조차.
이 모든 것이 정말 전쟁없이
청금석과 황토의 습한 폐허에서 만들어 졌다고 믿는가?
의기양양한 노란색을 찢어내고, 그 심부에서
가을 단풍의 붉음과 필멸의 바다의 푸름을 끌어내야 했다.
황제의 자줏빛을 암살하여
잘려 나간 짚의 번득임과 눈의 연약한 동공을 뽑아낸다.
지평선을 죽이고 그곳에서 쌀 술의 향수가 어린 황금빛을 해방한다.
그리고 태양은 저물어간다.
당신의 화려한 휘장은 끝없는 살인을 가린다.
한 조각 한 조각 찢으면서,
살덩어리를 찾아서
끝도 없는 고통이 이어진다.
VIII
그들은 쇠톱으로 무대를 해체하기 전 쇠망치로 계속해서 세차게 공격한다. 극도의 공포 속에, 재앙은 이어지고, 괴물들이 창궐한다. 나는 귀신들이 두려워 모든 것을 흩어놓고, 이 돌바다를 움직이지 않도록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과 그 운명이 되돌아오는, 이처럼 반복되는 법칙의 불행으로부터 기억을 떼어내기를 희망하며 헝겊은 칠판 위를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그래, 도망쳐라, 계속 도망쳐라!
나는 눈여겨본다. 그리고 나는 본다.
당돌한 색채가 뱀처럼 퍼져서 엉키고,
깨끗한 캔버스를 온통 뒤덮는다.
그 부재 속에 담긴 풍경.
내가 바라보니 세상이 내안에서 사라진다.
마침내 모든 것은 진동과 움직임,
그리고, 조화일 뿐,
나는 본다, 눈길도 주지 않고,
그리고 나는 바라본다, 수천개의 시선이 바로 여기에서
생기없는 물질을 예언자들의 기적으로 적셔온 것을.
2. 방문
'방문'에서는 작가의 프랑스 생활과 해외 각지를 방문했던 여행에서 비롯된 작업을 선보인다. 프랑스에 거주하던 시기 강명희는 1994년 몽골과 칠레 여행을 시작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 거의 반년마다 여행을 떠났고, 몽골 고비 사막을 여덟 번 다녀왔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작가는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등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장소로 홀연히 떠나 눈앞에서 본 생생한 풍광을 화면에 담았다. 프랑스 파리와 투렌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제작된 작품들은 당시 작가의 일상과 정서를 담담하게 반영한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투렌 작업실에서는 그곡의 정원과 땅을 소재로 한 <북원>, <중정>, <방문>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방문>은 작업실 뒤 정원에 날아든 한 마리 꿩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평범한 일상의 찰나를 영적이고 예술적인 순간으로 치환한다. 프랑스와 제주에서 그린 <시리아>시리즈는 우리게에게 먼 땅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죽음을 상기시키며 거대한 폭력에 작음으로 맞서고자 하는 예술가의 시도를 보여 준다. 강명희는 2000년대부터 중국에서 많은 시인들과 교류하며 회화와 시를 연결하여 선보이는 전시를 통해 예술 세계를 더욱 확장하였다.
제주의 지형 중 반도처럼 바다 쪽으로 돌출해 있는 송악산과 제주의 중심에 위치한 한라산의 다채로운 풍경을 혼합해 그린 작품이다. 강명희는 송악산으로 몇 년간 연필 데생을 하러 다니기도 했느네, 송악산의 언덕길을 비롯하여 한라산의 나무, 제주에서 자라는 제철의 꽃, 엉겅퀴, 봉숭아, 수국, 산초나무 가지 등을 이 작품에 그려 넣었다. 작가는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의 장편 서사시 <이소>를 좋아하여 필사하곤 했는데, 이 시는 굴원이 정치적인 이유로 추방당한 후 유량 중에 쓴 귀양 문학으로 알려져 있다. 시에 등장하는 산초를 제목을 담은 이 작품에서는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떠나거나 이동하며 지낸 유목적 삶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프랑스 투렌 작업실 창으로 보이는 뒤편 정원을 그린 작품으로 같은 풍경이 여러 번 그려지며 시리즈로 제작되엇다. 이곳의 고요한 땅에 이따금씩 꿩이 날아들어 잠깐씩 머무르다 사라지는 장면은 작가에게 현실적 시간의 개념이 무화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신비로운 순간으로 다가왔다. 제목으로 사용된 단어 '방문'은 기독교 미술의 오랜 주제중 하나로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 잉태를 예고한 수태고지이후 마리아가 사촌 엘리자베스를 '방문'하고 서로의 임신 사실을 알리는 내용으로, 많은 화가들에 의해 다양한 양상으로 그려졌다. 신의 강림과 관련된 이 이야기는 대상과의 일시적 조우가 예술적 영감을 촉발하는 초월적 순간으로 전환된 작가적 경험과 이어진다.
시리아 시리즈는 시리아 땅에서 일어난 전쟁과 폭력, 그로 인한 중음과 상처를 상기시키는 작품으로 첫 번째 작품인 <시리아 I>은 프랑스 작업실에서 그려졌다. 먼 곳의 전쟁 소식을 듣고 무력감을 느낀 작가는 당시 집에 검은 튤립을 심어 둔 땅이 하수도 공사로 인해 마구 헤집어진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이후에 지작된 <시리아 II>, <시리아, 역광> 등은 제주에 온 뒤 송악산 절벽을 그린 풍경으로 시리아에서 지속된 내전에 대한 혼돈된 심경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강명희는 평면을 다루는 일이 생성을 위한 소멸, 즉 살인이나 살생의 노력과도 같다고 말한다. 작가는 시리아 땅을 직접 밟은 적은 없으나 시리아 출신의 저명한 시인 아도니스와 친밀히 교우하였고,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기도 했다.
1980년대에 작가는 프랑스 파리 께 드 라 루아르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많은 작품을 그렸다. 이곳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작업실로 층고가 높아 대형 작업도 가능했다. 흐드러진 오둥나무 꽃과 열매를 그린 <꽃 핀 나무>는 10여 년간 사용했더 이 작업실을 떠나기 전 마지막에 그린 작품이다. <초록 물>, <시냇물에서 머리카락까지>, <운하에서>는 3층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보이는 운하의 물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시냇물에서 머리카락까지>는 당시 관심을 가진 중국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붙인 제목이다. 프랑스 서민 아파트의 모습을 그린 <낮>, <낮의 구성>, 밤의 풍경을 그린 <밤> 등은 시간대에 따라 이곳에서 보이는 장면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한 작업실에서 제작된 작품이지만 1980년대 초에서 90년대 초로 갈수록 대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화면이 추상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창문을 통해 본 제주 바다와 나무를 그린 <서귀포>는 작가가 처음으로 자연을 직접 마주하여 그린 대형 회화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당시 가로 4m의 큰 작품을 그릴 만한 곳이 없어 서귀포의 한 초등학교를 방학 기간 동안 빌려 작업햇다. <제주도>는 서귀포에서 바라본 범섬을 그린 것으로 바다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상단 중앙에 솟은 섬의 형상이 보인다. 제주에서 살지 않았을 때이지만 작가는 당시 그림을 제주에 두고 갔다고 다시와서 그리곤 했는데, 이는 시차를 두고 작업하는 현재의 방식과도 매우 흡사한 지점이다.
3. 비원
1960-80년대에 제작된 작가의 초기작들은 최근작에 비해 구상적 성격이 짙고 삶과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화하거나 서술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1972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그린 초기 작품에는 당시 한국의 상황과 작가의 기억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1970년대 중반에 제작된 <개발도상국>시리즈는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과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이후 그의 작업은 점차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경향으로 변화한다. 또한 초기작들은 작가의 전체 작업 세계를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지는 않았으나 창덕궁 후원을 소재로 한 <비원>은 이시기에 제작된 작품중하나이다. 자연에 대한 지속된 관심을 보여주며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오가는 특징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은 작가의 예술 여정에 있어 출발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발도상국 시리즈는 작가가 프랑스로 이주한지 얼마되지 않을을 때 고국을 생각하며 제작한 작품들이다. 이 시리즈에는 1970년대 한국에서 있었던 정치적 사건과 월남 파병, 경제 성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한국의 공장 풍경 등이 그려졌다. 푸른색으로 그려진 건축 구조물등을 통해 당시 작가가 관심을 가진 서양 고전 회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개발도상국"교수형">은 유신정권 당시 일어난 대표적 사법살인 사건인 인민혁명당 사건을 다루고 있다. 1947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판견 18시간 만에 기습적으로 집행된 사형은 한국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작가가 밀라노에서 본 비둘기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아스팔트 바닥에서 여러 마리의 비둘기가 한데 모여 모이를 쪼아먹는 모습이다. 이는 개발도상국 시리즈를 제작하던 무렵, 즉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암담하던 때에 그려졌는데 작가는 당시 무언가 덩러리 같이 모인 풍경이 마치 시체처럼 보였다고 회상한다. 구상적 이미지와 서술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며 비판적 발언을 하던 당대 프랑스 신구상회회의 영향과 일상적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개발도상국 시리즈와 <비둘기>는 내러티브를 담아내기에 적합하도록 유호가 아닌 아크릴로 그려졌다 이 그림을 그린 후 파리에 있는 화랑과 전속 계약을 하게 되는 등 작가적 전환점을 마련해 준 작품이다.
드물게 그려진 작가의 자화상 중 하나로 작가가 아파서 밖에 나가지 못하던 시기에 프랑스 파리 자텍에서 그려졌다. 이 작품은 1986년 퐁피두 센테에서 작가 임세택과 개최한 2인전에 출품되었고, 당시 전시 도록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캔퍼스 앞에서 붓을 든 모습이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며, 화면 오른쪽에는 멀리 작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비슷한 시기의 작품인 <마르티, 명희, 푸랑수아즈>도 동일한 파리 자택에서 그려졌는데 여기에는 중앙에 있는 작가의 모습과 함께 당시 자주 어울리던 여성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랫줄 그림
1964년 이태원과
아!!!! 수유리 1966년 (수유시장이 탄생하였던 1966년도에 수유리를 그린 그림입니다.~~~ 영광)
마지막으로 전한 도슨트의 한마디..
강명희 작가는 영화배우 신성일씨 친동생입니다...!!!
오빠도 오랜시간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였는데..
동생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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