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광복80주년을 맞이하여 가나아트 소장품으로 특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2001년 가나아트에서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1970-80년의 작품 200점 중 과거 어두웠던 시절에도 삶에 대한 순수한 성찰을 바탕으로 부끄러움을 노래하며, 미래의 자신의 삶을 부끄러움없이 살고 그 결과를 당당하게 받아들일 것을 노래한 윤동주의 '서시'의 주제에 맞게 당시의 불행했던 역사적인 사실을 각 작가마다 느낀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여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였는데, 이는 예술 작가만의 특권이었을 것이고, 또한 그 특권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되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의 어렵고 복잡한 시대를 담을 나의 서시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하는 좋은 전시였습니다.
광복을 전후한 모습이 주제이므로
근현대사에 관련된 우리 민족이 당면하였던 큰 불행과 기대 들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 남북분단과 탈북민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소개하여, 1970-80년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와 같은 세대는 오랜 세월로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을 작품을 관람함으로 현실감있게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고, 과거를 경험해 보지못한 현 세대는 작품을 통하여 현실감있게 과거의 일들을 상상해 보는 전시였을 것입니다.
작가분들이
느낀 대한민국의 과거의 불행했던 서사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속에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였고, 특별히 인상깊었던 주제, 표현은 탈북민께서 자신을 표현한 ' 먼저 온 미래 ' 라는 세마디 어절이 담고있는 의미가 예사롭지않게 느껴졌습니다.
탈북자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현재의 북한주민과 비교하면 '먼저 온 미래'가 되어지므로 남아있는 그들을 위해서 준비를 해야하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북한에 의해 적화된다면 북한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먼저 온 미래'가 될 수 있으므로 북한에 대해 경계하라는 말로도 이해가 됩니다.
본 전시에서 느껴진 것은
우리나라의 과거의 어두웠던 이야기들이므로 처음에는 일제 압제와 전쟁 고통 그리고 이데올로기 이념 분쟁으로 고통받았을 선조들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지만, 박희선 작가의 <한반도-빛> 작품을 통하여 우리들 중심에서 발원한 빛이 긍정과 희망으로 과거의 어려움을 딛고 미래로 향하여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비상하는 모습과 또한 북한과 남한의 작곡가가 함께 만든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을 통하여 현재의 이념적 극심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그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또한 보고왔습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잘 될 것입니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웠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미술관 설명글
서울시립미술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가나아트컬렉션 특별전을 기획하였다. 가나아트컬렉션은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200점의 작품군으로 1980-90년대 한국의 사회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민중미술 및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을 포괄한다.
광복이후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제 강점기, 광복, 6.25전쟁, 납북분단을 직접 겪었던 세대는 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 이어졌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95%는 광복이후에 출생하였으며, 이들은 남겨진 기록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서 광복 전후 일련의 근현대사를 접하고 배웠다. 이번 전시는 예술작품을 통해 한국근현대사의 거대담론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사회, 정치, 역사적인 맥락과 개인의 서사를 살표봄으로써 시대적 상황에 더 깊이 공감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전시는 총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을 주제로 고난과 희생의 역사를 살표본다.
이어지는 두 번째 파트에서는 6.25전쟁의 참혹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루며
세 번째 파트에서는 전쟁 이후 지속된 분단이 초래한 비극과 사회, 정치적 이슈를 성찰한다.
마지막 네 번째 파트에서는 전쟁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운 공존을 그려낸 작품들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1940-50년대 현실에 대한 저항과 극복 의지를 담은 시를 작품과 함께 구성하여, 시대적 울림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광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 죽음이 드리운 전쟁의 잔인함, 이념 대립으로 갈라진 남북의 현실에 대한 슬픔 등이 시 구절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않고 나아갔던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1919년 일본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선포한 '2.8독립선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 우리 겨레는 일찍부터 뛰어난 문화와 반만년 국가생활의 경험을 갖고 있다. 비록 많은 세월 전제정치의 해악과 경우의 불행이 우리 겨레를 오늘로 이르게했지만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선진국의 전범을 따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뒤에는 문화, 정의,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겨레는 반드시 세계평화와 인류문화에 공헌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는 앞선 세대의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의 헌신과 용기로 이루어낸 자유는 우리가 미래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소중은 유산이다. 이번 전시는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광복의 가치를 되새기며, 평화와 화해의 미래를 여는 서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1.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When the winter passes and spring reaches my star)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 '별 헤는 밤' 부분, 1941.11.5(유작)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의 꿈을 이룬 영광스러운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이 오기까지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독립운동가, 강제 징용 노동자, 학도병, 위안부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전시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식민지 잔재 청산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손장섭의 작품 강순애 할머니의 비극적 개인사를 매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풀어낸 김인순의 작품, 군함도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과 죽음을 다룬 김정헌의 작품, 마지막 1919년 일본에 대한 영원한 혈전을 결의한 조선청년독립당의 '2.8독립선언서'를 현대 국제 사회의 맥락으로 확장한 히카루 후지이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응노(1940-1989)는 1920년대에 사군자 중에서도 묵죽에 탁월한 서화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58년 도불한 후, 1970년대 파리에서 무용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발레나 현대무용, 동양 고전무용 등의 다양한 공연을 접하며 무용단이 열을 맞추어 춤을 추는 동작을 스케치로 남겼다. 무대 위에서 다수가 하나로 균형감 있게 어우러지며 통일된 장관을 만들어내는 군무는 그에게 있어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였을 것이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 매진한 <군상>시리즈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기인한 아픔과 상흔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마치 글씨를 쓰듯이 드로잉으로 표현된 사람의 형상은 이 작업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다양한 대형으로 춤을 추고 있는 인간 형상들은 두세 개의 간결한 획으로 그려졌지만 그 속에는 기운생동이 깃들어 있다.
손장섭(1941-2021)은 "에술은 시대의식의 소산"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아름다움의 대상이라기 보다 삶의 역사가 배어있는 풍경을 그렸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그린 동명의 시리즈 중 하나로, 근대기 한국사회의 참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화면 왼쪽에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상기시키는 조선총독부가, 가운데에는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벗어나 완전한 자주독립을 염원했던 독립문(1897년 준공)과 수많은 시신들이, 그 오른쪽에는 일장기를 상기시키는 핏빛의 원과 죽은 이들이 엉켜있다. 회색 바탕에 그려진 손발이 결박된 조선이들과 일본 순사로 추정되는 인물, 이미 목숨이 끊어진 듯 보이는 사람들의 형상은 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다 순국한 애국지사들의 처참함을 시각화한다. 지난 역사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과 독특한 화면 재구성을 통해 우리의 식민 역사를 소환하며 여전히 미해결된 식민지 잔재 청산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취시킨다. - 미술관 설명글
김인순(1941-)은 여성미술을 개척하고 사화 변화를 지향하는 행동주의 미술의 초석을 다진 작가다. 이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순애 할머니를 그린 작품이다. 강 할머니는 1992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 보상에 대한 국제공청회에 나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다. 이때 김인순은 일본군의 비인도적인 행위를 용기 내어 고발하며 눈물흘렸던 할머니와 현장의 인상을 드로잉으로 기록하였다. 화면 속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산의 굴곡진 능선과 겹쳐지고 그 너머로는 바다가 펼쳐진다. 이 풍경은 할머니 고향인 마산 무학산에서 바라본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마산에 살다가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간 강 할머니는 고초를 겪다가 5년 후 돌아왔지만, 이웃과 가족에게 상처받고 다시 고향을 떠나야만 하였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위안부 피해여성이 고국에 돌아온 후에 겪은 삶에 주목하였다. - 미술관 설명글
김정헌(1946-)은 민중미술의 대표 주자로 1980년대 초반부터 문물, 도시화, 분단 조국의 상황을 주요 소재로 다루었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하시마섬(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이들의 강제 노동 역사를 다룬다. 하시만 탄광은 지하 1km가 넘는 해저탄광으로 온도가 45도를 넘고 수시로 해수가 쏟아져 들어오며 유독가스가 분출되는 환경이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질식, 폭발사고, 영양부족으로 인한 질병 등으로 사망하기도 하였다. 화면의 중앙에는 욱일기 모양의 잿빛 하늘아래 군함도가 있고, 칠흑 같은 바다 아래에는 탄광노동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위로는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노란색 동그라미 패턴을 배치하였는데, 이는 군함도를 격파하는 달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과거 주권 없는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는 작가의 시각적 장치이다. - 미술관 설명글
노순택(1971-)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풍경을 다큐멘터리 사진 형식으로 기록하는 작가이다. 그는 한국의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정치적 폭력과 그로 인해 변화하는 일상의 모습을 담아내며, 단순한 사건 기록을 넘어 시각적 은유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조명한다. 이 시리즈는 평택 대추리 황새울 들녘의 공 모양 구조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작업이다. 이 구조물은 물탱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의 군사시설 레이돔이다. 레이돔은 미군의 첩보 수집에 사용된 돔형 레이더로, 한국 안보를 둘러싼 미국의 존재를 암시한다. 미군 기지 확장으로 대추리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국가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익숙했던 구조물이 사실은 그들을 밀어내는 거대한 힘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국가 권력과 주민들의 삶이 충돌하는 장면을 포착하였다. 작가는 공을 달이나 골프공처럼 연출해 촬영하였는데, 이러한 유희적 방식은 현실의 부조리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 미술관설명글
이용백(1966-)은 미디어아트, 조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인간 존재와 사회적 구조에 대한 질문에 던지는 작업을 해왔다. 이 사진 작품은 '군인이 천사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엔젤솔저>시리즈에 속한다. 언뜻 작품을 보면 화려한 인조 꽃들로 화면이 가득 차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으로 위장한 군복을 입고 총부리를 겨눈 채 전진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무리 꽃으로 군복을 장식한다 해도 군인이 천사일 수는 없다. 언뜻 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남한의 일상 속에서도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 핵 문제 등 다양한 위협이 여전히 존재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작가는 세상이 꽃밭이라면 군복도 꽃무늬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 미술관 설명글
이반(1940-)은 월북자의 아들로서 연좌제로 인한 고통을 겪었으며, 이러한 경험은 분단의 아픔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70-80년대 단색회화를 기반으로 캔버스에 구멍을 뚫거나 밀어 올리고 찢고 구기는 등 신체적 개입을 통해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내었다. 이 작품은 88 서울올림픽 공식예술포스터 판화로 제작되었다. 화면 중앙에는 X자 형태로 교차하는 횃불이 있으며, 배경에는 작가가 자필로 써 내려간 휴전협정문, DMZ를 평화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구상, 작가가족의 계보, 작품 기획 단계에서 그린 드로잉과 작성한 메모 등이 적혀있다. 횃불의 기둥은 인간의 대퇴골을 형상화 한 것으로 6.25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상징한다. 작가는 서울올림픽이 분단을 초래한 국가들이 모여 평화를 기리는 축제라는 모순을 고발하면서도, 동시에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에 대한 강렬한 염원을 작품에 담았다. - 미술관 설명글
2.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With the same hands that pulled the trigger)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구상 '초토의 시· 8 - 적군묘지앞에서' 부분
'초토의 시' 대구 청구출판사 1956
6.25전쟁은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안긴 비극적 사건이다. 군인 피해는 한국군,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을 모두 합쳐 322만명에 달했으며, 민간인 피해는 남북한 총 249만 명이었다. 6.25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한 민족이 이념을 이유로 서로에게 총을 겨눈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전쟁의 후유증은 휴전 이후에도 지속되어, 전쟁고아와 이산가족 발생, 전후 세대의 교육 기회 박탈. 남북 이념 대립에 따른 사회적 불신과 갈등의 고착화와 같은 사회적 피해를 남겼으며, 국토의 황페화와 농업 기반 파괴로 인한 식량난 발생 등 경제적 피해도 초래하였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예술로 승화한 권순철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불안한 시대를 보낸 경험이 반영된 송창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권순철(1944-)은 리얼리즘 경향의 작품을 제작하면서도 거친 붓칠, 두꺼운 마티에르, 뭉개진 형상, 어둡고 탁한 색조를 통해 표현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는 주로 '산'과 '얼굴', 그리고 '넋'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삶의 애환을 표현하는데, 이 세가지 주제는 초기 작업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넋>시리즈는 신체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작가의 유년시절 6.25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상실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물감을 반복적으로 덧발라 매우 거칠고 두꺼운 마티에르를 표현하였으며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을 대조적으로 처리하여 비물질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인 '넋'의 존재를 감각적이고 강렬하게 형상화 하였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의 개인사를 역사와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해 나감으로써 보편적인 정서로 대중의 넋을 위로하고자 한다. - 미술관 설명글
류인(1956-1999)은 주로 근육이 강조된 남성의 육체를 조각으로 재현하면서도, 이를 압축, 절단, 왜곡하는 방식을 통해 이간의 억압된 심리나 사회의 부조리를 표현한 작가이다. 작가는 "조각은 보는 이와 함께 숨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인간의 양면성이나 인간 존재의 불안과 같은 삶 그 자체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입방체 모양의 철근 구조안에 군모를 쓴 남성의 두상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속 머리만 남은 무기력한 표정의 남성은 6.25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헛된 죽음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갈등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반영하는 듯하다. 류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정하는 입방체는 사회적 제약과 억압의 구조를 의미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입방체가 선만 남도록 해체된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극복과 변혁에 대한 희망을 암시한다. - 미술관 설명글
3.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Meanwhile the sky occupied by the star forever remains one)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박봉우 '휴전선' 부분 정음사 1957
1953년 7월 휴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전쟁의 총성은 멎었지만, 한반도의 비극은 지속되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현재까지도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단상횡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풀어낸 작품들을 살펴본다.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손장섭과 신학철의 회화. 탈북민과 실향민의 개인적 서시를 풀어낸 신미정과 임흥순의 영상, 휴전상황에서 초래된 한반도의 여러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한 노순택, 노재운, 류인, 이용택, 함경아의 작품, 마지막으로 1990년대 비무장지대 문화운동을 주도하며 행동한 이반의 예술 포스터인 판화 작품을 포함한다.
신학철(1943-)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주도한 주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미시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개인의 고통과 마주하고자 한다. 관념적인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로서 민족의 수난사를 다루고자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실향민들의 애환을 소재로 한 회화 작품이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철조망은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을 상징하고, 흙에서 솟아오른 노인의 손 하나가 그 철조망을 애타게 어루만지며 죽어서라도 고향에 이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철조망 너머에는 꽃이 피어 있는 푸르른 초원과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멀리 분홍치마를 입은 여인이 길을 걷고 있다. 이는 전쟁 통에 생이별을 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 미술관 설명글
손장섭(1941-2021)은 전라도 완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영향으로 자연을 터전으로 하는 소박한 삶을 그렸는데, 이러한 풍경화는 단순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마을의 모습이 아니라 그곳에 서려있는 삶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었다. 이 작품은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시골길 위에 엄마와 아이가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손장섭의 작품에 등장하는 길은 항상 북으로 뻗어있는데. 이는 통일에 대한 작가의 염원이자 의지를 보여준다. 길 위에 있는 엄마와 아이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현실과 꿋꿋하게 맞서는 민중을 상징한다. 하늘과 나무 등의 자연풍경은 평면적 질감과 짧은 터치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작업 초기부터 관심을 두었던 추상에의 의지를 보여준다. 한편 작가는 수채화에 흰색 물감을 섞어 탁하지만 부드러운 자신만의 색을 내었는데, 차분한 색을 사용하여 내적 진실에 다가서게 만든 것은 그의 작품의 주요 특징이다. - 미술관 설명글
함경아(1966-)는 자수 공예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탐구해 왔다. 특히 남북한의 이념 갈등, 권력 구조, 전쟁과 폭력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며, 남북한을 잇는 협업을 통한 소통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북한자수회화'시리즈중 하나인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폭발 장면을 손자수로 재현한 것이다. 2008년 집 마당에 날아든 북한 '삐라'에서 착안한 작가는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로 도안을 제작해 천에 인쇄한 뒤, 이를 중국을 거쳐 북한 자수 노동자들에게 보내고 완성된 작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이 과정에서 도안과 작업 지시서는 또 다른 형태의 '삐라'가 된다. 디지털 이미지가 노동집약적 수공예로 변환되는 과정은 남북한의 현실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검열과 압수 등의 난관 속에서도 이루어진 협업은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경계를 넘어선 예술적 대화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 미술관 설명글
4. 먼저 온 미래 (Early arrival of future)
마지막 파트에서는 예술이 정치적, 이념적인 대립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먼저 온 미래'는 탈북민들이 통일을 염원하며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번 파트에 전시된 전소정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제작된 작품이지만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확장될 수 있는 반핵, 반전, 평화에 대한 메세지를 담은 이응노의 한국화, 빛나는 하나의 한반도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조각에 투영한 박희선의 조각, 남북한의 풍경을 한 폭의 산수화에 그려낸 이세현의 회화, 남한과 북한의 두 피아니스트가 함께 음악을 작곡하는 미래를 현재로 당겨온 전소정의 작품을 통해 화합과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기대해 본다.
박희선(1956-1997)은 한국 리얼이즘 2세대 조각가 중 한 명으로,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민을 조각으로 풀어내었다. 작가는 산, 씨앗, 한복 입은 여인, 자물쇠, 매통 등 토속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 한국적 조형을 실천하고자 하였으며, 작품 내용 면에서도 한반도의 역사를 이야기하였다. 특히 분단을 주제로 한 작품과 함께 산의 형상을 한 인체 조각도 다수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박희선의 작품들 중 말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1991년 유럽 여행이후 집중적으로 제작한 <한반도>시리즈 중 하나다. 금속을 재료로 두 팔을 벌린 사람고 같은 형상을 만든 것으로, 중심에서 발원한 빛이 퍼지는 모양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빛'이라는 긍정과 희망의 주제를 선택한 것은 한반도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미래를 향한 낙관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미술관 설명글
이응노(1904-1989)는 도불 이후 1970년대의 <문자추상>을 거쳐 1980년대의 <군상>시리즈까지 서예의 필치와 공간 구성을 기반으로 동양화와 서양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왔다. 이 작품은 문자추상과 결합된 <군상>시리즈 중 하나로 무수히 많은 사람의 형상을 군집되게끔 '그려서' 문자를 '쓰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일제시기와 해방, 도불과 동백림 사건으로 인한 1년6개월간의 옥중생활 등 대한민국의 격동기와 함께 굴곡진 삶을 살아온 이응노의 관심사는 언제나 민중의 애환과 평화였다. <군상> 시리즈는 1980년의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이후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럼으로써 '반전', '반핵' 등의 국제적인 이슈를 포용하는 인류 사회의 보편적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 미술관 설명글
이세현(1967-)은 전통 산수화의 형식과 서양화의 묘사 기법을 결합하여 현실과 관념이 교차하는 풍경화를 창조한다. <붉은 산수> 시리즈는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을 통해 본 비무장지대(DMZ)의 붉은색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비무장지대는 민족 분단의 비극적 상징이지만, 보존된 자연환경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는 모순을 느꼈다. 작가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남한과 북한의 풍경을 콜라주 하듯이 배치하여 하나의 산수화를 완성함으로써 분단의 아픔을 넘어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시리즈의 초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백두대간에서 굽이굽이 뻗어 나오는 산맥과 사이에 위치한 농지와 농가, 강가의 정자, 등대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 미술관 설명글
전소정(1982-)은 영상, 설치, 조각, 사운드, 퍼포먼스, 출판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비선형적인 시공간을 구축해 왔다. 이 작품은 '이념적 대립을 예술로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작가는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과 남한 피아니스트 엄은경을 초대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의 음악적 대화를 통해 하나의 곡을 완성하도록 제안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곡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이라는 뜻처럼 두 음악가가 서로 소통하면서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이 곡은 북한 민요<용강기나리>와 남한 동요<엄마야 누나야>의 선율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두 연주가가 작곡 과정에서 나눈 대화와 악보가 영상작품과 함께 전시 되었다.
김철운은 북한 당 간부인 아버지와 대학교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4세 때 피아노를 시작하였다. 평양음악무용대학과 모스코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졸업한 뒤, 25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수석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여자친구를 위해 리처드 클에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을 연주했다는 이유로 북한 보위부의 조사를 받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음악적 자유를 찾아 탈북을 결심하였다.
엄은경은 4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중앙대학교 음악대학을 거쳐 독일 뮌헨 국립음악대학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국립음악대햑에서 전문 교육을 받았다. 예술의 전당, 금호아트홀, 영산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열었으며, 한국피아노학회와 한국쇼팽협회 정기연주회에서 연주하였다. 루마니아 올테니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뮌헨 필하모닉 목관 수석 연주자들과 협연하였다. 또한 한국 창작가곡 연주와 녹음에 참여해 1,000곡의 음원 반주자로 이름을 올리며 한국 가곡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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