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의 갤러리를 둘러보다가 서울의 과거의 항공사진이 전시되어있는..갤러리 더스페이스 중학에서 김한용사진가의 작품전시회가 있어서 관람하였습니다.
1960년대 서울의 사진들이 인상적이었고, 그 어린시절 보았던 서울의 다양한 공간의 사진을 보고, 옛 생각과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먼저 1960대의 서울..
남대문, 동대문, 철거된 중앙청과 신신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의 건물과 창경원(지금은 창경궁)의 놀이시설의 모습은 어렸을 때 보았던 모습 그대로로 " 맞어 과거에는 그랬어지"하고 너무나 어려서 잊었던 옛 추억의 파편들이 부분부분 생각이 났습니다.
전시되어있지는 않지만 책자속에서는
당시 유명 영화와 광고사진등 수많은 상업용 사진들을 통해서 김한용 작가의 당시 위상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인물 스냅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찰나의 포인트인데....사진의 전문가답게 동네, 새벽 시장에서의 사람들, 그리고 놀이에 열중인 아이들의 모습속 어떤 찰나의 포인트를 잘 포착하고 찍은 작품들이 책자속에 가득했습니다.
좋은 사진들을 보고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의 과거의 지역, 건물, 인물의 사진을 이렇게 많이 보유했다는 것이 참 귀하다는 생각..
그리고 후세대에게 잘 보존해서 전해줘야한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남기는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시기획자의 글 속에서는 이미 이의 중요성을 감지하고, 작가분의 수십 만점의 사진중 약 1만여 점을 선정되어 디지털화와 아카이빙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겠지..
우연히 들른 전시회에서..
코흘리기 시절의 서울을 타임머신을 타고가서 잘 보고 돌아온 느낌입니다...
훌륭한 사진을 남겨주신 김한용작가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편, 수유시장의 1960년대 다양한 자료도 잘 정리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전시기획자글 요약 - 제미나이
김한용 선생의 사진 작업과 그것이 한국 현대사진 및 아카이브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몇 가지 핵심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광고사진에서 현대미술로
김한용 선생의 광고사진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처음 현대미술 전시의 맥락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광주비엔날레 등 대규모 행사에 초대되며 예술적 재평가를 받았습니다. - 아카이브의 시작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과 함께 그의 사진이 한국 사진 아카이브 제1호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방대한 필름이 디지털화되었습니다. 특히 B컷 필름 속에 숨겨진 역사적 가치가 드러났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 서울의 기록자
김한용에게 서울은 삶의 터전이자 작업의 중심이었고, 그의 사진에는 광화문, 창경원, 신신백화점, 숭례문 등 시대별 서울의 풍경과 건축, 시민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항공사진까지 포함해 서울의 변화를 메타데이터처럼 보여주는 자료가 된 것입니다. - 예술성과 기록성의 결합
단순한 자료를 넘어 미적 감각이 살아 있는 사진들 , 특히 항공사진의 기하학적 구도는 현대 미술적 가치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 사진이 건네는 메시지
<서울 메시지: 김한용의 사진전>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 각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내며 ‘서울’이라는 도시와 대화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전시 소개가 아니라, 한 사진가의 평생 작업이 어떻게 개인의 업적을 넘어 사회적·역사적 가치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특히 “아카이브니 자료니 작품이니 하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이미지의 힘”이라는 대목은 사진의 본질을 잘 짚어낸 표현한 글입니다.
나의 서울, 김한용의 서울
한 금철 (전시기획자)
2005년 한국의 주빈국이었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일환으로 “Fast Forward: Photographic Messages from Korea” 한국 현대사진전이 열렸고 김환용의 광고 사진이 특별 섹션으로 전시되었다. 동서양을 관통하는 광고 사진의 강력한 색채와 키치적인 이미지가 한국 사진의 역사적인 단면으로 제시되었다. 당시 80대의 김환용 선생은 그의 독특한 뉴욕풍의 옷차림으로 오프닝 날부터 참석하여 “엽”하는 기합으로 해외 관중을 압도하였다. 김환용 선생의 광고사진이 현대미술 전시의 첫 발을 딛는 데뷔 무대였다. 그 후로 오스트리아 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등 대규모 현대미술 행사에 초대되며 그의 광고 사진은 현대미술 관점으로 재평가받게 되었다.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하면서 김환용의 사진이 정리되는 계기가 생기게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에 아시아문화정보원이라는 새로 개관하면서 한국 문화 예술에 대한 아카이빙이 시작되었다. 한국 사진의 아카이브 제1의 프로젝트로 김환용 사진이 선정되었고, 방대한 양의 사진이 디지털화 되었다. 아카이빙 초기 단계가 시작되었다.
충무로에 있는 김한용 사진연구소는 한 자리에서 50여년을 지켜왔기에 수만 개의 필림이 버려지지않고 보관될 수 있었다. 실제로 수십 만개가 넘는 필림이 남아있었고 대부분은 방치되어있는 B컷 필림이었다. 당시 사진가는 A컷 필림을 광고주나 제작자에게 주었기 때문에 김한용 선생이 보관했던 필림은 B컷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김한용 선생은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작업량이 엄청나서 하나의 완성작을 위하여 수많은 롤의 필림을 사용하였기에 공개되지않은 A컷 같은 B컷 사진이 대량 남아있었다.
“이런 것들이 무슨 가치가 있어? 남 보기 부끄럽지...” 하며 안 보여주시려던 것을 하나하나 정리하니 실로 귀중한 대한민국 근대 역사가 그곳에 담겨 있었다. 한 사진가가 90 평생을 한 우물만 파며 이루어낸 사진 작업은 개인의 업적을 넘어 사회와 국가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자료이며 작품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김한용의 사진에는 아카이브로의 덕목이 들어 있다. 오랜시간 축적된 엄청난 양의 방대한 이미지가 한 시대를 다양한 시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메타데이터가 된다.
1924년 평남 평천에서 태어난 김한용은 한국 전쟁때에 종군기자로, 이후에 보도 사진가로 활동하였다. 1950년대 김한용사진연구소의 시작과 함께 광고사진가, 영화스틸사진가로 활약하며 한국 상업사진의 선구자로 추앙받으며 사진가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서울은 김한용의 제2의 고향이다. 서울 도심의 사진은 광고 홍보물 이미지로 서울시를 비롯한 많은 광고주로부터 의뢰받기도 하였지만 주위를 기록하는 사진가의 습관성 의무감으로 무수하게 많은 서울 사진이 남겨졌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아시아문화전당으로부터 의뢰받아 김환용 선생의 사진을 정리하면서 필자는 거의 매일 김환용 사진연구소에 출근하였다. 수십만의 사진 중 일 만점을 선별하여 디지털라이징하고 사진에 대한 메타데이타를 만들기 위해 김한용 선생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사진의 시간과 장소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촬영 당시의 얘기를 많이 듣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김한용의 서울 사진에는 그의 삶이 담겨있다. 선생이 살던 동네, 새벽 시장, 이이들의 놀이 등이 정겨운 모습이 담겨 있고, 이런 사진들은 ‘서울풍경’이라는 책으로 엮어 나왔다.
김환용에게 서울은 자신의 삶이며 가족이고 일터였다.. 2026년 스페이스 중학의 개관전인 <서울 메시지: 김환용의 사진전>에서는 엄청난 양의 서울 사진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았던 사진들도 중심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서울 메시지>와 같이 서울 사진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규모의 항공 사진은 마치 그 길을 걸었던 것과 같은 기시감을 주며 관객을 맞이한다. “아, 내가 어렸을 때 제 건물이 있었어요... 그 옆에는 소방서가 있었는데... 이제는 무슨 건물이 들어섰지?" "내가 살던 집이 저기 어디였는데... 이 골목이 맞나?" "아. 조선총독부? 아니 중앙청인가? 이게 언제 없어졌더라? 그 시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기억하고 옛 일을 회상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를 반겨주는 서을의 이미지를 아스라이 간직한다. "와 서울이 이랬나? 이때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없네?” “이 때는 어떻게 이 사진을 찍었을까? 드론도 없는데” 그 시대를 모르는 세대는 다른 감성으로 서울 사진을 대한다. 사진은 같으나 보는 이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자신 만의 이야기를 한다.
1층을 지나 계단을 오르며 창경원의 사진이 등장한다. 일제 시대에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바꿔부르며 벚꽃 나무를 심고 원숭이가 있는 동물원을 만들었다. 처음 보는 원숭이와 코끼리가 신기하여 사람들이 몰리고 밤 벚꽃놀이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검소하기로 소문난 필자의 외할머님은 이이들에게 벚꽃놀이르 보여주시겠다고 하며 데리고 가서 창경원 입장권이 아까워 담벼락만 한바퀴 돌고 왔다고 한다. 창경원 사진을 다 보고 2층 복도에 들어서면 당시 서울의 가장 세련된 장소인 신신백화점 분수대가 나온다. 그 옆에는 60년대 초기 신세계 백화점의 외관 건물과 실내 쇼핑몰이 보인다. 어떤 이는 당디 가장 화려했던 장소였던 백화점에서 교복을 맞춰 입고 전시회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2층 전시실로 들어서면 서울의 건축들이 등장한다. 숭례문, 흥인지문의 옛 모습들, 소박하게 아무렇게 쓴 “South Gate"라는 간판이 보이고 전차가 보인다. 서울의 전차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며 동대문을 보니 그 옆에 버스터미널이 있다. 이곳에 버스터미널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지도 않았던 의외의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 전시 이미지를 이어간다. 항공사진들이 보인다. 김한용의 항공사진은 작품이라기보다 자료용으로 제작되어진 것이다. 당시 헬기에서 몸을 내밀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끈으로 묶은 채 촬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 구석구석을 기록하였는데 지금 보아도 어디인지 잘 모르는 곳이 많다. 이 사진을 보며 누군가가 이야기 해주기를 바란다.
1960년대에 걸쳐 고층 건물들이 지어지며 서울 도심이 자리잡게 된다. 서울 광화문은 행정기관 언론사, 레져, 문화예술 기관 그리고 다양한 기관이 자리잡고 있다.김한용은 특히 광화문 사거리를 많이 기록하였다. 연례행사가 열리고 플랜카드가 세워지고, 퍼레이드, 국군의 날 행사가 열리는 곳,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거리가 수도 없이 기록되었다. 사진마다 거리는 조금씩 변화하고 도심의 변화로 연도를 추정한다. 시민회관이 지어지고 종합청사가 들어선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삼청동과 가까운 동십자각의 모습이 외부 벽 전시관에 걸렸다. 지금은 없어진 한국일보사 건물이 연도를 짐작케한다. 문득 생각이 났다. ”한국일보사 어린이 피아노 콩클에 나갔었는데...“ 북촌, 성북동 등지를 찍은 항공사진에는 초가집, 기와집, 양옥집이 같이 어우려져있고,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멀리 위에서 촬영하여 기하학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마치 현대미술과 같은 세련됨이 있다. 김한용의 사진은 방대한 양의 이미지의 자료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놓칠 수 없는 미적인 감성이 있다.
<서울 메시지 : 김한용의 사진> 전은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이도, 낯설게 그 시대의 서울을 바라보는 이에게도 각자 할 말이 있다. 우리는 서울을 어떻게 봐 왔는다? 김한용은 서울을 어떻게 기록하였는가? 아카이브니 자료니 작품이니 하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감성이나 향수라는 감상적인 단어로는 담을 수 없는 뾰족한 그 무엇, 롤랑 바르트의 풍크롬이 이런 걸까 생각해 본다. - 미술관 설명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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